연애는 언제까지나 배은망덕한 기쁨이며, 부끄러워해야 마땅한 일이며, 가능하다면 남의 눈을 피해 맛보아야 할 금단의 과실이다.

그서을 마치 인생에 당연히 열리는 과실인 양 장소를 안 가리고 먹어 대고, 과즙을 남에게 튀겨 대는 행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인식해야 마땅하다. [p.218]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너무 재밌게 읽은 탓에 모리미 도미히코님의 신간을 너무도 기다렸던 나에겐 '태양의 탑' 출간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사카 엑스포 부지에 만든 '엑스포 공원'내 태양의 탑은 매끄럽게 활 모양으로 굽은 몸체, 양쪽으로 쭉 뻗친 녹아 사라지는 듯한 팔, 꼭대기에서 빛을 발하는 황금빛 얼굴,복부에 도사리고 있는 잿빛의 부루퉁한 표정, 뒤면에 있는 으스스하고 평면적인 검은 얼굴, 어느것 하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고 무엇보다 상식의 틀을 벗어난 어이없는 거대함이 압권.

그 태양의 탑을 그녀는 반드시 우주 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한다 ㅋ 태양의 탑을 '우주 유산'으로 지정하고, 방책꽂이에 태양의 탑 미니어처를 장식하고, 휴대전화 장식줄을 태양의 탑으로 바꾸고, 태양의 탑에 관한 기사가 실린 미술 잡지를 사모으는 작은 일들이 모두 코믹하게 다가온다.

도쿄에서 탑이라고 하면 '도쿄타워'가 손꼽힐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탑은 누가 뭐래도 '태양의 탑'. 이것이 실제 존재하는 탑이라니~

태양의 탑이란 제목이 붙게된 사연이 무엇이길래~ 라며 책 속내용을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한 이 책 '태양의 탑은' 붕괴해가는 다다미넉장반짜리 방 한가운데 앉아 '나의 일상'을 쓴 수기다.

너의 일상 따윈 관심 없어 라며 사내 냄새 펄펄 풍기는 수기는 읽지 않는게 현명하단 식으로 써내려가는데 그럼에도 구태여 이 수기를 읽는 사람은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유쾌한 경험이라 말할수는 없지만 좋은 약은 늘 입에 쓰기 마련이라며~ 단 쓰다고 해서 좋은 약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는 글과 함께ㅎㅎ

이 솔직한 멘트들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 일상의 90퍼센트는 머릿속에서 일어난다." [p.87] 는 말처럼 우리 주위에 흔하게 일어나는일, 내가 겪고있는 일일지도 모를 그런 아주아주 평범한 일들을 맛깔나는 단어들로 채워져있다.

인기 없고 별 볼일 없는 대학생의 한심한 일상을 이렇게나 멋드러지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그렇다면 우리네 일상은 책 몇백권으로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너무나도 독특한 주인공보다 더 독특한 친구들.

읽는내내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 태양의 탑을 쓴 모리미 도미히코님과 와세다 1.5평 청춘기, 별난 친구들의 도쿄표류기, 극락타이생활기,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의 다카노 히데유키님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된다면 어떨까 ~ 이거야말로 일상과 판타지의 조화로움의 만남이 아닐런지 ㅎ

까짓 크리스마스가 별거냐 가볍게 거리를 누벼줄 계획이었는데 예상밖의 어마어마한 돌풍에 휘둘린 남자들. 달달 떨면서도 들뜬 표정으로 다리위를 지나가는 남녀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으며 빈축을 사기도 팔기도 하는 이들. 앤없는 사람들이 거릴 돌아다니기엔 크리스마스 거리는 이토록 위험하다. 아 ~ 절대공감 !!!

앤없는 사람들, 그가 남자분이라면 더더욱 공감하며 읽어나갈 책이다. 지금 읽으면 완전 딱인데~

"자아, 정신을 차려야지. 틀어박혀 있으면 안 돼요. 이제 곧 크리스마스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