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8년, 1616년 2월 28일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 8년 <승정원일기>에서 사라진 15일간의 기록, 광해가 감추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사라진 15일간의 내용을 '왕자와 거지'라는 플랏을 이용해 펼쳐나가고 있기에 그 내용이 사뭇 궁금하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와 거지 나름대로의 삶이 흥미로운게 아니라 왕자와 거지의 역할이 바뀜으로써 그 내용이 더 흥미로와지고 재미있어진다.

광해 또한 '왕자와 거지'의 플랏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광해는 뒷자리로 물러나고 광대인 하선이 왕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이다.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광대짓을 하는 하선이 광해와 똑닮았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에 앉아 광해가 살아왔던 삶을 대신 살아가니 그 속에 수많은 에피소드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반설렘반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광해하면 다들 그를 폭군으로 부른다. 그리고 사극을 봐도 광해는 폭군으로 잔인무도한 짓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처음부터 광해가 폭군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도 처음에 광해는 민심을 살피고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도 나간 성군이었다. 그런 그를 시해하려는 자들의 끊임없는 음모에 왕의 자리가 불안해지고 정치는 더 힘들어지니 정치보다는 여색을 밝히게 된것이다.

자고로 왕은 술과 여색을 가까이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는데 광해는 궐 밖의 안개시라는 여인과 연분을 통하면서 왕의 뒷자리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하선이 대신한다.

 

왕이 된 하선은 광대다. 왕으로서의 예법도 모르고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른다. 오직 술자리의 흥만 돋우면 되는 그런 신분이기에 권좌에 앉아있는 것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왕이 먹는 밥상에 행복해 하고 손 까딱하지 않아도 신하들이 다 알아서 챙겨주고 처리해주니 하선은 하늘에서 떨어진 복을 거뭐쥔 것 같다. 하지만 밥만 먹고 한 자리에 계속 앉아있으니 좀이 쑤신다.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신하들도 분면 힘들꺼라 생각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고 광대로서의 신분을 발휘해 그들을 웃게해 준다. 기미나인이라 불리는 사월의 고충을 들어주고 대역으로 앉은 자리지만 그녀의 소원을 꼭 들어주겠노라 언약까지 하는 사람으로서 인간됨됨이가 바르다고 할 수 있다.

왜 광해가 우수에 젖은 중전을 멀리하고 추녀인 안개시의 치맛폭에 싸여 있게 되었는지 이해를 못하는 하선은 언뜻본 중전의 모습에 이끌려 중전의 오라비인 유정호 목사를 풀어주고 중전에게 웃음을 찾아주는 남자로 다가간다.

 

허균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광해는 왕으로서의 열정이 너무도 부족했지만 하선은 가짜 왕으로서 의욕이 넘쳐 흘렀다. 둘 다 나쁘다 할 수 있으나 하선이 특히 나빴다. 조정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p.128

 

이쯤되면 왕이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고, 반역자들은 더 많은 음모를 꾸미게 된다.

수 많은 추측가운데 이야기는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어디에서 그 기개가 나타나는지 하선은 왕의로서의 완벽한 자질을 보여주는 것 같은데 허균의 눈에 하선은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의욕만 불태우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끝나게 될 지 궁금해질 쯤, 광해가 죽고 하선이 왕이 되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왕자와 거지에서는 둘 다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럴 수 없는가 보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싸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백성을 괴롭히고 죽이는 정치가들에 의해 광해는 달팽이 집속으로 숨어버리려 하고 반역자들은 더 판을 치는 가운데 진정 나라를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 백성의 고충을 살피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