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의 판단을 뒤로하면 키신저라는 인물은 충분히 흥미로운 사람이다.
 다 읽지는 못했지만 세계를 다스리는 배후의 정부와 관련된 책을 읽었었는데, 
 그에 따르면 키신저는 그 정부의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한 명이었다.
 심지어 그 배후 정부는 미국의 대통령을 좌지우지 할 정도로 힘이 있는 기관인데 말이다.

 이런 말의 신빙성은 제쳐두고라도 키신저처럼 국제정치의 굵직한 일들을 처리한 인물을 꼽아보라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더하여 그 과정이 매우 비밀스럽다는 것도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하지만 매우 안타깝게도(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0살만 갓 넘은 아이들도 자서전을 쏟아 내는 판국에 키신저의 자서전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백악관 시절"과 같이 키신저의 회고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객관적이거나 개인적이라기 보다는
 왠지 맥나마라가 베트남 전 이후 찍은 다큐멘터리처럼 회피적인 모습이 더 강하게 보인다.
 어쨌거나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그 명성에 비해 키신저에 관한 책은 매우 적다.
 그런 상황에서 키신저 재판을 이렇게 뒤늦게 읽게 된 이유는,
 이 책이 특정 시각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두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얇다.
 그래서인지 내용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마치 ’네가 이 책을 읽으려면 배경지식 이 정도는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약올리는 느낌이다.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서 진실과 주장 간의 연관관계를 꾀어 맞추는 그 작업이 꽤나 힘들다.
 왜 세익스피어 희곡에 관한 설명서는 수도 없이 나오는데, 이 책의 해설서는 없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시작부터 목적을 분명히 밝힌 이 책은
 미국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키신저를 국제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음을,
 이 전의 전범 재판소의 판례에 비추어 증명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 전과 인도네시아 관련 상황, 중국과의 외교에서 키신저의 소극적인 태도,
 그리고 키신저의 전반적으로 이익에 관련해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키신저에 관련된 편향되지 않은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책에 기대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