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사라진 글벗』은 개암나무에서 출간된 위대한 책벌레 시리즈의 여덟번 째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던 조선의 문장가이자 최초의 한글 소설인『홍길동전』을 쓴 허균이다. 사실 허균에 대해서 학창시절 많이 배웠던 그가 보여주었던 문학사적인 가치는 관련수업 시간에 집중적으로 배웠고 시험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정도였다.

하지만 인간 허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게 없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허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과  최초의 한글 소설인『홍길동전』을 집필했던 이유가 소개된다.

시리즈의 제목처럼 책벌레였던 위인들이 겪었던 일화를 통해서 독서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는 책이지만 이 책은 허균에 관한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결합되어 있어서 마치 그의 미니 전기를 읽는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사라진 글벗'인 서자 이문의 경우엔 허구의 인물이며 거의 스무 살 가까이나 많았던 둘째 형의 경우엔 허균이 아버지로 여겼던 실존인물이며 그의 아버지 허엽은 서경덕과 이황의 제자이자 유명한 학자였으며, 초희로 나오는 누이는 조선 최고의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이다. 

집안 자체만 봐도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가 어떻게 해서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는지는 허구의 친구인 서자 이문을 통해서 알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 자체가 책이 많았고, 책을 좋아해서인지 어린 허균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당시에도 천재라 불릴 정도로 시를 짓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 허균에게 이문이라는 서자 출신의 친구가 있었는데 서자가 어떤 존재인지,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지 못했던 허균은 우연히 주막에서 전기수(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서자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이문의 출신성분을 알지 못했기에 서자가 어때서라는 생각을 말로 표현해버리고 이후 이문은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두 사람은 좋은 글동무였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허균이 책장수에게서 <서유기>를 사기 위해서 아버지의 귀한 묵호를 책값으로 지불했는데 이를 걱정한 허균을 위해 이문이 자신의 아버지 것을 몰래 가져다 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문을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점 고민하던 허균은 결국 서당 훈장님께 물어 이문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동안 이문이 어디에 사는지도 몰랐는데 사실 이문의 아버지가 이조 판서 명문가였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렇게 찾아간 이문의 집에서 예전에 이문을 서당으로 데려다 주고 데려가던 여종이 이문의 어머니이고 이문이 이조 판서의 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문이 남긴 서자와 적자를 차별하는 세태를 한탄하는 시를 읽고 허균은 대성통곡 한다.

더욱이 자신의 누이인 초희는 시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책을 읽거나 시를 짓는 대신 바느질을 해야 했고, 결국 시집을 간 버린 누나의 스승인 이달(그도 서자 출신이다)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는다. 그리고는 스승에게 시가 아닌 언문으로 되어 있어서 백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겠다고 말하는데... 

여기에서 허균의 호인 교산에 관련한 일화가 나오는데 강릉에 있는 외갓집 뒤에 이무기가 엎드려 있는 듯한 형세의 산이 있었고 이를 교산이라 불렀는데 이는 곧 집안에서 용으로 승천할 큰 인물이 날 징조라며 자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허균이 죽은 이문에게 적은 답시(적서를 차별하는 것을 눈먼 벌에 비유한다)를 보고 허균이 허씨 집안을 빛낼 큰 문장가가 될 재목이지만 허씨 집안을 뒤엎을 인물이 될 수 있다는 허봉의 매형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허균은 서자들과 친분이 있었고 이러한 일은 결국 자신을 역모죄를 씌우게 되고 집안도 크게 일어나기는 커녕 그 반대가 된다.

이 책에서는 허균에 대해 미화하기 보다는 사실 전달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었을 솔직한 언변과 자유분방한 사고에서 기인한 그의 모습이나 그가 일으킨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일들 역시도 책의 뒷편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문의 일을 통해서 서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홍길동전』쓴것처럼 나오기도 하지만 허균이 따랐던 둘째 형님 허봉이 서자들과 개의치 않고 교류했던 것은 아마도 허균에게도 이어졌을 것이고 이는 그의 가치관 형성이나 그가 펴낸 책들에도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의 작품들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되니 적서의 차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한 차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어서 여러모로 유익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