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그림자만 봐도 안다.

하지만 그림은 잠시 감춰두고 글만 읽어줘 보자.

박쥐며 하마며 고릴라같은 동물들을 설명하는 작가의 글은 거의 시에 가깝다.

동물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만 일반적인 설명문과는 다르고 동물들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이야기한다.

- 난 누구게?

그래서 책 제목이 <이건 뭐게>가 아니라 <난 누구게>다.

조금 어려울 듯 해도 아이들은 기가막히게 잘 맞춘다.

<난 누구게>에 나오는 동물들은 모두 제 이야기를 잘 풀어낸다.

악어가 무섭게 꼬리를 흔드는게 흔들흔들 엉덩이춤이라고 얘기하니 웃음이 난다.

코끼리는 자기가 코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으스대면서 코로 음식을 먹는 걸 따라하면 큰일난다고 당부를 한다.

박쥐는 자기는 거꾸로 서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삐딱하게 구는 것은 아니라고 우긴다.

제각각 동물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면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귀엽고 재미있다.

작가 코시노 타미오는 어린이의 심성을 잃지 않은 이인 듯 하다.

 

아이가 상징에 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의 선입견이었음은 <그림속 그림찾기 ㄱㄴㄷ>에서도 이미 경험하였다.

조금은 어렵지 않을까 했던 추상적인 내용돌에서도 아이들은 사물의 특징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어떤 면에서 상상력이 죽어버린 어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지도 모르겠다.

 

나중엔 아이와 그림자 따라 그리기를 해봐야겠다.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데에는 그림자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