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키핑을 처음 만난 것은 <창 너머>였던 것 같다.
몇 겹이나 겹쳐진 이미지 뒤에 공포에 질린 듯 놀라서 커다랗게 뜬 눈동자.
이미지 겹치기의 달인인 찰스 키핑은 보정시에 색의 선택에 예민하기로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성스럽게 구석구석 그려넣은 찰스 키핑의 섬세한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다.
<낙원섬에서 생긴 일>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동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다.
화려하지는 않고 주변에서 관심은 받지 않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낙원인 곳. 그곳이 낙원섬이다.
발전과 속도 경쟁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었던 곳이 낙원섬이다.
빨리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휙 지나가고 고개 돌려 한 번 쳐다보지 않지만 개성있는 자신만의 삶이 존재하는 곳이다.
밖에서 보기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작은 낙원섬의 뒤떨어짐을 보지못한 사람들은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유료고속도로를 놓기로 결정하고 토지를 매입한다. 시의원들은 토론끝에 결의를 하지만 거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두 사람은 블랙과 화이트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개성있는 자신만의 가게를 갖고있던 사람들은 보상을 약속받고 가게터를 넘기지만 커다란 대형마트에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 코너를 차지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고속도로가 건설되는 동안 낙원섬의 변두리에 속해 고속도로에서 멀어 매입되지 않은 곳에 살던 할머니는 울타리를 치고 낙원섬의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놀이터를 만든다.
고속도로 개통식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다. 블랙과 화이트만 빼고.
흑과 백으로 세상을 나누지 않으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어떤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찰스 키핑은 말하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