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생이 읽은 『88만원 세대』

 

- 우석훈ㆍ박권일, 『88만원 세대』-

1. 경제 모피어스와의 만남

   <나는 꼽사리다>로 유명한 우석훈 교수(이후 저자)를 만난 것은 지난 12월 7일,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마련한 '저자와의 만남' 자리였다. 학교의 지지부진한 홍보로, 저자의 트튓을 통해 하루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았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강연을 들었다. 보통 이런 자리에 갈 때는 책을 읽고 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터라, 웬만하면 완독하고 가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빨간 후드티가 인상적이었던 저자는 시간이 남아 부산대 앞에서 이발을 하고 왔단다. 1만원이라는 싼 가격에 감동을 한 모습이 인상 깊어서 열심히 강연을 들었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강연 내용은 대부분 그의 책에 있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고 들었다면 훨씬 좋았을 뻔 했다고 생각했다. 뭐 아무렴 어때, 강연을 통해서 그가 어떤 책들을 썼는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가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총 12권이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생태경제학 시리즈	응용경제학 시리즈
88만원세대	생태요괴전	문화로 먹고살기
조직의 재발견	생태페다고지	농업(준비중)
촌놈들의 제국주의	디버블링	과학(준비중)
괴물의 탄생	생태헤게모니(준비중)	정치/언론(준비중)

 총 12권 중 8권이 나왔으니 경제 대장정 시리즈는 약 60% 이상 완성되었다. 이 중 88만원세대가 이 대장정의 출발이다.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성을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이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4개의 주제에 대해 외형적으로는 기승전결의 구조, 내부적으로는  영화 <레모니 스니켓>의 '불행시리즈', 즉 '하나의 불행이 끝나면 더 큰 불행이 온다'는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오마이갓! 아마 88만원세대만 읽어본 사람들은 이 사실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95%의 불행을 벗어난 5%의 20대들은 다음 책인 조직의 재발견에서 박살난다.

  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구성인데, 경제학 저서에 이런 구조를 도입한 것도 신선하다. 진중권이『미학 오디세이』를 3성 대위법으로 구성한 것은 전공이 미학이니까 그렇다고 하지만, 생태경제학을 전공한 저자가 이렇게 아름답고도 절망적인 구성을 할 줄은 기대하지 않았다. 프랑스 유학파라서 그런지 전체적인 구성 외에도 책 구석 구석 비유와 유머, 위트가 넘치는 표현이 많이 보이는 등 문학의 흔적이 보인다. 물론 블랙코미디지만 ㅋㅋㅋ

2. 빨간 알약의 쓴맛

  환상은 달콤하고, 현실은 쓰다. 아 근데 정말 쓰다. 신문, 뉴스가 그냥 초콜릿이라면 이 책은 카카오 99%다.

<목 차>

서문

제1부 대한민국 10대와 20대, 그들의 운명

1장 첫 섹스의 경제학 : 동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

2장 20대가 만나게 될 세상

제 2부 20대에 숨통을 10대에 생존을

1장 위기의 20대:자멸인가, 세대착취인가?

2장 다안성 1세대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

3장 바리케이트와 짱돌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이며 기능론적인 고찰

에필로그 '희망고문'을 멈추기 위하여

  1부는 대한민국 10대와 20대 그들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1장은 16세 소녀의 첫 섹스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동거권이 보장되지 않는가?' 에 대한 답이다. 보수적인 사람이 보면 말도 안되는 이 물음 뒤에 사실 우리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첫 충격을 수습하고 어느새 고개를 끄덕거리다보면 눈물을 흘리게 되는 이야기. 대학등록금과 불합리한 청소년 고용실태. 저자는 청소년 알바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을까 궁금할 정도이다. 동시에 기성세대들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착취'인 1318마케팅과 알바 고용주들은 그간 몰랐던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눈뜨게 해준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던 불편한 진실.

  2장은 이제 10대를 거쳐 20대에 접어든다. 20대란 세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장은 88만원세대라는 용어의 탄생과정이 담겨 있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이 될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 평균 119만원에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한 금액이 바로 88만원이다. 이 마법의 숫자 88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온 2007년은 88년생이 20대가 되던 해이다. 심지어 초판 1쇄는 내 생일에 나왔다. 나는 뼛속까지 88만원세대다ㅠㅠ 이런 만남을 한용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날카로운 첫키스'라 할까...

  책의 표지에 있는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중 1부는 절망의 시대에 관한 내용이고, 2부는 희망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2부 1장은 20대가 처한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선진국의 사례를 든 후, 우리 20대와 다른 세대들간의 모습을 통해서 20대의 위기가 세대착취에서 시작됨을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사실 20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많은 20대들이 노력을 해도 안된다는 현실에,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2부 2장은 이 책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크리스마스 유령이 되어 스크루지 영감이 된 독자의 손을 이끈다. 세대 착취가 벌어지는 현장 속에서 독자는 스크루지가 흘린 눈물을 흘릴 것인가? 그리고 20대에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질 수 있을까? 저자는 여기서 다안성(diverstabi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다안성이란 다양성(diversity)과 안정성(stability)의 합성어로, 한 시스템이 다양성을 확보했을 때 원래의 균형 혹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를 '다안적 상태'라 할 수있다고 한다. 그리고 20대가 다안성 1세대가 되기를 희망한다.

  2부 3장은 저자의 각 세대에 대한 제안이다.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10대와 20대 모두가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10대와 20대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모두가 나서면 해결할 수 있지만, 한 명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결국 그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 휴머니즘이다. 경제학자의 결론치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도 <도덕감성론>과 <국부론> 모두를 저술했다. 물론 휴머니즘이 들어가면 언제나 유토피아적 결론으로 도달한다. 하지만 유토피아와 다른 것은 선진국들에서 이러한 움직임들이 오래 전부터 이뤄져 왔고, 또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3. NEO가 ONE이 되기까지

  빨간약을 삼켰더라도 NEO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무수한 NEO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결국 하나의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 세대의 문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심각하다. 단순히 박근혜 누나가 말하는 것처럼 취업 수당을 준다고 해서, 김난도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냥 아프라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대안이 완벽한 청사진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우리 세대 문제를 고민하고, 바꿔보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그리고 감사하다. 이 책에 대한 별점 중 채워지지 않은 하나는 우리 세대의 문제가 해결되고, NEO가 ONE이 되었을 때 그 빈칸이 채워지고 빛이 날 것이라 생각한다.

  20대의 시각으로 마지막을 정리하자면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20대라 생각한다. 알바 시장을 전전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20대여 20대를 믿자. 당신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20대밖에 없다. 신뢰는 세대 간이 아니라 세대 내에서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나는 나를 믿고, 우리를 믿는다. 꿈틀거리고 움직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를 한국 자본주의가 배우는 것이 사실은 이 복잡하게 얽혀진 문제를 푸는 첫 번째 단초이다.(304p) 좌파인가, 우파인가,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20대 그리고 다음 세대가 당면하게 될 경제적 운명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풀 것인가, 그게 우리의 당면한 질문 1번이다.(305p) 우리는 독자 여러분들이 모두 자신만을 위한 유령을 만나 짧은 여행을 하길 바란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진행되는 20대의 모습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모두 우리의 20대들이고, 자신이기도 하다. 그들의 불행은 미래의 불행이고, 우리의 불행이기도 하다. 그들이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여성과 노약자, 생태계의 말 못하는 존재들 그리고 개발경제 시절 스러져간 원혼들까지 모두 웃을 수 있는 그런 완전균형의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모두 행복한 여행이 되시기를. 그리고 해가 뜨면 우리의 젊은 세대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질 수 있기를.(278p)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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