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험이 지속되고 성찰하다보면 어느순간 개념은 명확해진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모호해지는 단어 '사랑'만큼 복잡다묘한 것도 없다. 가슴뭉클하게 하고, 온전한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 같은 영원불멸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남녀간은 필연적으로 대립각을 내세우면서도, 뗄래야 뗄 수 없는 보완적 관계로 이어간다.  동성에게서 매듭지을 수 없던 결핍요소를 이성에게서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일만 가득하길 바라는 사람의 맘은 같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동일한 이정표는 배타적인 감정을 표출하며 충돌하고 만다.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갈구하는건 남녀 모두 동일하다. 그런데 오로지 '나'로 집중하는 순간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게 되는것이다.  흔하게 현실속의 답답함을 해소하는 매개체로 우리는 '로맨스'를 동경하게 된다. 세상의 속내에 어지럽혀지지 않고 온전히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매료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1:1매칭으로 이어지는 짝짓기의 과정은  어느순간 '나'가 되어, 내가 이상하는 모습들을 아무런 불협화음없이 순탄하게 그려낸다. 매력적인 외모와 부드러운 목소리, 사이다같은 속삭임의 3박자가 이어지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소설은 메마른 감성에 짙은 흡인력을 가져준다. 마음으로 공허해질수록 로맨스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들어온 창가의 풍경처럼 책의 표지는 산뜻했다. 몇백원의 가격이지만 오랜 세월 피로회복제로 사랑받아온 드링크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 드링크의 가치는 사실 엄청나다.  알고보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아도 약국을 들러 드링크 뚜껑을 "탁"소리나게 돌려 시원하게 주고받는 마음 때문인지, 약국은 동네 구멍가게처럼 친근한 양태를 보여준다. 그렇게 남녀노소 즐겨와 어느 약국할것없이 한가득 비워진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전부터 묘한 동질감을 줬다. '성'만 다르고 '이름'은 동일한 저자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뉴욕의 연인> < 그 녀석>에 이은 3번째 작품이라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의 이력을 나열할 법한 저자약력에는 간단하게 Happily ever after.......? 라는 마침표와 물음표로 매듭하고 있다. 확연히 글쓴이 자체가 책을 쓰는 본질이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수수께끼같은 탐문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기전 에필로그부터 읽었다. 어떤 생각으로 이 장편의 소설을 써내려갔는지를 알고 보면 ,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소풍 김밥을 준비하는 10년차의 내공을 봐도, 그의 내면엔 평범한 가정이 가지는 가족애가 담겨있는 모습이다. 또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저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10년정도라면 베이비붐의 기성 부모님과 다른, 오늘날의 30-40대로 고단하게 생존하는 일상의 모습이 책속에 담겨있을거라는 기대감을 품었다. 

   암으로 오랜 투병을 하는 할머니, 노름빚을 지는 할아버지, 동네 작은 약국을 하는 아버지의 배경묘사에서 여느 80년대 즈음의 가정의 모습에서 출발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다고 하며, 금수강산의 우리나라를 그래도 강조하던 그때는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급격한 인구이동이 시작되던 때였다. 그래서 건강을 돌볼 새 없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이 있었고, 손자손녀들이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풍경도 익숙했다. 자세한 묘사는 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이런 시대적 흐름을 책속에 그려내야 했다. 한편으로 삭막한 현실의 묘사까지도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려 한 흔적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사랑도 처방이 되나요? 의 스토리는 넉넉치는 않지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약학을 전공한 '지완'에게 모진 삶의 시련은 계속된다.  허망하게 떠나간 아버지뒤로 그녀에게 남겨진 건 갚아나가야 할 빚 뿐이었다. 평범한 삶을 원할 뿐인데, 분노에 가까운 불행의 과정이 이어진 것이다. 그녀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온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의 순간 정신을 놓고 길을 가던 그녀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힘없는 그녀를 보며, 남자는 되려 물을 억지스럽게 들이키게 한다. 망설임없이 거칠게 몰아세우는 그의 응대를 받아들이며, 호기심을 느낀다. 

   이제 겨우 빚을 어느정도 청산할 즈음,  또다시 돈을 조달해야 할 위기에 봉착한다. 시련의 남녀가 펼칠 로맨스의 결말은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궁금한 답은 500페이지가 넘는 잔잔한 이야기를 넘겨보면 알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할 만큼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는한 내면세계를 잘 알지 못한다. 불과 최근 3년의 시점을 배경으로 잡은걸 보면,  최소한의 거주환경의 안정성이 불확실해진 최근의 사회현상을 그려내고 있는 모습이다. 즉 기회자체가 봉쇄된 체로 살아가는 좌절의 현상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안정적인 기조의 노동환경이 급격하게 전환되며 치열한 빈익빈 부익부로 이어진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잔잔한 로맨스 결말을 통해 녹아내리려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암투극은 없다. 현실의 푸념가운데 솔직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흐름만 있을 뿐이다. 전혀 통하지 않을것 같은 세입자와 건물주의 로맨스는 그래서 이미 궁극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매듭될 수 밖에 없었다. 내게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요소들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것은 나누고, 내가 부족한것을 가진 사람을 통해 채워나가면 충분할 뿐이다. 빚걱정없이 온전히 누군가를 치유해 줄 동기면 충분한 지완에게 마음의 상처로 가득한 강우만큼 천생연분은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어느정도 가정을 꾸려가며 알토란같은 자식을 돌보는 세대일수록 공감을 일으키는 내용들이었다. 마음의 상처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지쳐간다면 산뜻한 책들로 마음의 빈곤함을 채워가는것이 우선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까닭은 나와 다른 남을 이해가는 과정속에 자기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재정돈하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일일히 부딪쳐가며 겪지 못하는 경험의 한계를 누군가의 정제된 언어의 지혜로 배워가고 성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