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부자는 누구입니까? 질문에 대한 대답이 " 빌게이츠"로 귀결되던 시대가 있었다. 2010년 포브스의 발표에서 이 영원한 1인자의 자리는 카를로스 슬림으로 바뀌었다. 무려 4년간에 걸쳐 경제전문지 포브스 발표 세계 부호 랭킹 1위를 수성했다.  산업혁명이후 대영제국에서 미국으로 주도권이 넘어간 자본주의의 지형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것도 기회의 땅 미국을 원하는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한 멕시코 에서의 자본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북중미의 대표적인 나라이면서, 멕시칸 특유의 향신료 가득한 요리가 연상되는 멕시코에 대한 선입견은 상당히 강하다. 정열적인 성격 한편으로 서부시대 개척자들의 후예들이 총잡이로 돌아간 듯한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미지... 하지만 최근 몇년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역동적인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적인 부호로 자리매김한 카를로스 슬림에 관한 사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려 200여개에 이르는 그가 소유경영하는 회사들... 그중에서도 멕시코 유선 통신 시장의 90%를 독점하는 텔멕스는 남미 18개국의 2억6천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에 대해 살펴보기 전엔 막연히 우리의 정경유착과 같은 기업의 성장과정을 답습한 것이 아닐까? 여겼다. 

   용감한 기자 엔리케 오소르노의 다년간의 취재, 조사의 결과로 밝히는 <카를로스 슬림>의 진면목은 책의 부제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 중남미를 제패한 천재 경영자" ...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화폐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경제적 성취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재화나 서비스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그러다보면 자원의 희소성앞에 부자들의 탐욕이 얼마나 지배하느냐에 따라 재분배는 좌우될 수 밖에 없다. 경영자는 기업의 이윤창출에 앞서, 효율적인 관리기법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개척하는 사람들이다. 즉 돈줄을 잘 관리하는 안목을 갖추고 있다 할 수 있다. 

      매년 발표되는 포브스의 추정재산으로만 대한민국 최고 부호보다 5배많은 재산을 소유한 천문학적 존재가 카를로스 슬림이다. 이 경제적 성과는 이미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성장해온것인지 하는 이면에 대해서는 암묵지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치밀한 조사과정을 통해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의 경우에도 대표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평상시 다양한 자서전들을 탐독하고 있는지... 그가 추구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잘사는 20%의 부자가 못사는 80%의 다수를 먹여살리는 시대를 넘어서, 소수의 1%들이 99%의 대중을 지배하려하는 사회에 접어들었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의 흐름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국가 불이행 의 고통분담이 있은 후, 오히려 양극화는 가속화되었다.  양질의 경쟁력을 위한 구조조정의 결실이 재분배에 집중되지 못하고, 또다시 선성장의 구도에 편중된 탓이다. 카를로스 슬림이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82년 멕시코의 채무불이행 시점에서 본격화된다. 그 시작은 담배갑 라벨 인쇄기업 '갈라스 멕시코'를 헐값에 인수하면서 부터이다. 80년대 멕시코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시작된다.  IMF사태이후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민영화되기 시작한 우리와 흐름이 일맥상통한다. 

    20세기초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본격 건설되기 시작한 라틴 아메리카의 상당수 국가들은 당시 세계 선진국이었다. 풍부한 광물자원을 바탕으로한 개발이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던 라틴 아메리카가 점점 미국 자본에 종속되기 시작하며, 퇴락하기 시작한다. 카를로스 슬림의 위상은 그에서 빛나는 것이다. 미국의 거대한 기업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경제영역을 독자적으로 중남미대륙에 구축한 것이다.  200개에 달하는 거대한 기업 네트워크속에 가난한 자국의 국민들이 경제적 성취를 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다만 인수합병을 통한 영역확장에 있어서도 효율적인 경영원칙을 전개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장의 흐름을 읽는 동시에 자신이 이 사회를 위해 어떤 혁신적인 공헌을 할 수 있는 지를 떠올린다. 더이상 정부가 자율적인 시장에 개입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없다. 여겼다.  

 과도한 정부규제를 반대하는 기업이 발전하는 생태계를 건설한 것이다. 매번 정부의 정책을 유리하게 가져가려고 하는 우리의 풍토와 사뭇 고무적인 면인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생각은 끈끈한 정치 공동체를 형성했고, 중남미의 생활영역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책속에 이 사람이 거쳐온 생애 전부를 담기도 힘들고, 우리와 사회적 환경이 다른 멕시코에서의 과정들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말을 전개함에 있어서 상당수의 모순점들도 분명하다. 하지만 한 기업의 CEO로서가 아닌, 경제사회정치를 지배하는 그런 탁월함을 읽을 수 있었다. 카를로스 슬림은 인간적인 조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자녀에게 읽어보라고 책선물을 건네는 70대 노인의 이야기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