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하나를 나는 생각했었다."

불빛 하나, 사람 하나 없는 거리를 걸을 때 두려운 생각이 들면 그 생각이 꼬리를 물어 더 무서워진다. 빨리 환한 불빛과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고......
여림의 시편들이 그렇다.
세상에 대한 절망과 외로움으로 가득하지만 결국 희망과 세상에 대한 따뜻함을 소리없이 내리는 함박눈처럼 뿌리고 있다.

*밥이 내게 말한다*

당신들은 나를 빌어 욕하지만
그러나 나는 기꺼이 당신들의 밥이 된다
밥맛없는...밥값도 못하는...밥벌이도
못하는 주제에...밥벌레 같은...밥통 같은,
밥줄이 끊어진 당신들이 모여 앉아 나를
두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 나는 밥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다가도 밥술을
구걸하러 온 시동생의 뺨을 주걱으로
사정없이 올려붙인 놀부 마누라처럼
당신들을 향해 밥상을 엎고 싶어진다
사람 사는 맛은 밥맛과도 같은 거야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이
밥상 앞에 오순도순 정답게 둘러앉아
군내가 풍겨나는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
싱싱한 고등어를 토막쳐 넣고 끓인 찌개에다
따뜻한 한솥밥을 함께 나눠먹는 거지
밥 한끼를 벌기 위해 오늘도 수없이 많은
밥맛 앞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온
내게 밥이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