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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투르니에(Paul Tournier).

이 이름을 접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

청소년부 선생님께 선물 받은

<임영수 목사의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였으니 20년도 더 전이다.

대학에 와서 이 분의 책 몇 권을 읽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모험으로 사는 인생>은

이후의 내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내 인생의 책' 중 한 권이 되었다.

환자를 단순한 한 명의 병자가 아니라

인격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만나게 하신

영혼으로 대한다는 '인격 의학'을 주장한 그의 외침은

너무나 삭막한 이 시대에 훈훈한 미풍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각박한 현실 속에서 이러한 '낭만'은 오래지 않아 깨어졌고,

투르니에라는 이름 또한 오래 전에

꽤 열심히 읽었던 책들의 저자 중 한 사람으로 뭍혀버렸다.

그러다가 김병년 목사님의 <바람 불어도 좋아>를 읽어가다가

투르니에에 대한 인용을 만나게 되었고,

마침 가지고 있던 그의 마지막 저서인

<고통보다 깊은>(1982)을 읽게 되었다.

<고통보다 깊은>은 40 여 년 동안 스무 권이 넘는

투르니에의 명저 중 대미를 장식하는 책이다.

여든이 넘은 그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책 제목처럼 '고통'에 대해서이다.

많은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자기 연민과 분노에 사로잡혀 인생을 송두리째 상실하곤 한다.

이 책은 시작부터 파격이다.

저자 자신이 고아였음을 밝히고,

또한 인류의 역사 속에 강한 발자욱을 남긴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고아였음을 말한다.

딱딱한 호두 껍데기를 깨뜨려야만

맛있는 알맹이를 먹을 수 있듯이,

우리네 삶의 고통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호두 껍데기들을 깨뜨리게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고통을 계기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창조성'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 적지 않게 마음이 불편하다.

여든 넘은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이니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렵다만,

고통이라는 주제도 그렇고

꼭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의문이 들 정도로

다루는 영역이 너무 넓다.

하지만 평생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 인격적으로 대해 왔고

수 많은 명저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아 준 분임을 고려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었을 때,

과연 굉장한 책이구나 하고 감탄을 하게 되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면서

조잡한 서평을 마칠까 한다.

"그런데 우리 성찰의 결론은 개인의 운명에서든, 국가의 운명에서든

항상 고통과 시련과 상실과 잡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악이며 그 자체에는 유익한 덕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천부적인 창조성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과 싸워야 하고, 그에 올바로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통으로 인해 오랫동안 익숙했던 일상성이란 장치가 부수어져

익숙한 행동 모델이 소용 없어졌기 때문이다.

창조성은 우리 삶에 더 자유롭고 더 사려 깊고

더 독창적이고 더 생산적인

새로운 추진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238~239쪽)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계시기에,

모든 고통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