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피복상가가 밀집한 평화시장에서
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타 죽어가면서 그가 처절하게 외쳤던 부르짖음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

북한이 먼저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을 제정하자
이에 뒤질세라 일본의 법을 그대로 번역만 해 온 것으로,
그 당시 일본과 우리의 경제력 차이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법이다.

어린 시절부터 처절한 가난 가운데
갖은 고생을 하다가,
평화시장의 노동자로 정착하게 된 전태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탓하면서
하루 빨리 기술 배워서 좀 더 나은 대우 받을 생각에 여념이 없을 때,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고
중학 1년 중퇴의 학력으로 한문으로 된 법조어 가득한 책을
불철주야 공부를 하게 되고...

법의 내용과 너무나 상이한 현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이러한 노력은 일간지에 기사로 실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국정감사 및 선거 때를 맞아 잠깐 화제가 되었을 뿐,
피복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최후의 투쟁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제물 삼았던 전태일 열사...

그의 죽음은 유신의 망령이 떠돌던 197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향한 부르짖음을 일으켰고,
여기에는 그의 유지를 받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청계피복노조 동지들의 힘이 컸다.



또 한 사람...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불꽃이 되어 
가슴에 박혀 온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서울대 법대를 다니던 '조영래'라는 사람이 있었다.

민청학련 사건이라는 조작극에 도피하는 가운데
사력을 다해 써 나간 책이 바로 이 <전태일 평전>이었고,
1976년 그의 이름을 감추고 출간되었다.

이 후 변호사가 되어, 이 땅의 수 많은
억울한 이들을 위한 변호를 했던 조영래 변호사...

그의 뛰어난 필격이 수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심지어 삶을 변화시킨 역작 <전태일 평전>을 낳은 것이다.



읽으면서 문득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약한 자들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끌어안고 
온 몸을 불살라서 항거했던 전태일 열사와,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자 불꽃처럼 살아간 어머니 이소선 여사,
생명의 위협 가운데서도 의로운 죽음의 의미를 알리고자
최선을 다해 책을 펴 낸 조영래 변호사...

... 그리고,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인권신장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