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
'드라마'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지 엔터테인먼트의 차원이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하면 다소 과장일까?

일이라든지 각종 메여있는 시간,
잠이라든지 식사 같은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게 드라마 아닌가?


이영미라는 분은, 최근 <시사IN>의
'꽃보다 남자', 그리고 '아내의 유혹' 두 편의 명품 막장 드라마를
비평한 글을 통해 그 필력을 느끼게 되어,
작년 말에 나온 드라마에 대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창작과 비평> 등에 실렸던 논문 스타일의 글 여섯 편에
주간지에 등재되었던 사극에 대한 비평 네 개가 하나로 엮여져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글 속에서 저자의 예리한 시각과
놀라운 필력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글은 다섯 번째의
'아줌마와 성공 - 리얼리티와 욕망의 균형'이 아닐까 한다.

대중문화로서의 드라마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데.
단지 현실의 리얼리티를 살려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서 시청자들의 희망까지 담아 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여러 요소들을 동시에 살려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는 내용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현실을 직시하게도, 또 관조하게도,
그리고 그 속에서 꿈을 꾸게도 된다는 것인데...

... 드라마  작가라는 인물들은,
이 나라에서 정치가 못지 않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구나 싶다.


가장 인상적인 글의 일부를 옮겨 온다.

"대중예술의 형상이 현실성은 적으나
그 욕구, 욕망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수용자에게 만족감을 줄 경우,
수용자는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종종 잊거나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애초부터 비현실적인 판타스틱한 작품에서야 그 형상이
기본적으로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잊을 리 없지만,

.. 현실적 개연성이 높은 설정을 해놓고
여기에 비현실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부여해 놓는 경우,
그 비현실적 요소가 바로 수용자가 욕망해 본 것이기 때문에
매우 큰 만족감을 줄 경우,
수용자는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중예술의 수용자들은, 
오히려 욕망에 충실하여 현실성 있으나 
자신의 욕망을 채워 주지 못하는 형상을
비현실적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 (143쪽)

꿈꾸기 힘든 현실의 각박함에서 잠시 탈출하는 정도가 아니라
드라마 속 세상이 자신의 욕망과 더욱 가깝기에
현실을 도외시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
드라마가 가지는 위험 요소이다.


결국 드라마를 봄에도 주체적인 자신만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에 따라 드라마는 단순히 시간을 죽이고
현실을 떠나 꿈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살게 되는가,
아니면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고
활기있게 살게 해 주는 활력소가 될 것인가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