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전' 이라는 형식의 책은 장점과 함께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나름 그 인물에 일각연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지만,
평전 저자의 한정된 관점에 얽매여서
본연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 없는 사회」의 저자 정도로 알려진
이반 일리히(Ivan Illich)를 알고 싶어서 내가 고른 카드는,
일리히의 저작을 다섯 권 번역 소개한 박홍규 교수의 평전이었다.
일리히의 대부분의 저서들이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겠다.
"이반 일리히, 소박한 자율의 삶" 이라는 제목과
재생지를 사용한 조그만 이 책은 사뭇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본격적인 평전이라기 보다는
먼저 이반 일리히를 접한 선배가 후학들에게 제시하는 '독서 가이드',
그리고 이반 일리히의 저작과 삶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보며 쓴 수상록이라 하겠다.
저자는 일리히에 대해 알려져 있는 단편적인 말들이
실제의 그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를 거듭 말한다.
이반 일리히는 생태론자라든지 혁명가라든지 종교 비평가라든지 하는
제한된 명칭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진정한 자유인' 이라는 것이다.
산업과 제도에 대한 그의 비판 기저에는
근원과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이반 일리히라는 인물에 대해 양가 감정이 들었다.
우리 나라와 같이 각종 제도가 극단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온갖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본연의 모습을 강조하는
일리히의 메시지는 가장 적실하다.
한편 일리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낭만적이리만치 긍정적이어서,
제도의 속박을 벗어나서 스스로 충분히
소박한 자율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보는 듯 하다.
그런 측면으로 볼 때 일리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상가라기 보다는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을 비판하는 문학가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그의 말이 얼토당토 않는 망상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의 에필로그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본다.
"일리히에게 유토피아는 없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유토피아는 누구나 머릿속에서 나와 이렇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나
희망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와 스스로 해 보려는 것이다.
일리히는 그러한 희망을 인류에게 걸고 있다."
학교, 병원, 자동차, 그리고 교회가
교육, 건강, 교통, 종교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제도화 된 교회와 사역자에 매여
스스로의 신앙이 퇴화된 '무늬만 성도' 들이 꼭 읽어야만 할 책이다.
'제 2의 종교개혁' 이란 결국
성도 스스로의 내면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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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적 자유인 이반 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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