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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들이 쓰는 것이기에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혹독할 수 밖에 없다.

인간적으로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고,

표리부동한 한고조 유방에 대해서는

용이 보호하는 제왕의 기운을 가진 인물이니

하는 식으로 호들갑을 떤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는 진시황이 세웠지만

고작 3대까지만 이어진 다음 망하고,

그 다음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치열한 초한전을 거쳐 다시 통일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중국 56개 민족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족을 한족(漢族),

표준어로 지정한 말을 한어(漢語)라고 하는 등을 볼 때

중국이라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고대왕국이 바로 유방이 세운 한나라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유방과 항우의 인물이 어떠할찌라도,

후대의 역사가들은 유방에 대해 우호적이고

항우에 대해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고우영 화백의 「초한지」는

놀라울 정도의 균형 감각으로 쓰여진 책이다.

시종일관 갖가지 미사여구로 유방에게 덧씌워진 채색을 벗겨내어

마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화신인 듯한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한편 끝까지 패왕의 위용을 지킨 위대한 패배자인 항우에 대해서는

인간적인 애통함과 품격을 갖춘다.

또한 유방에 의해 이용만 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파초대원수 한신과,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장량에 대한

안타까움이 잘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러한 등거리 시선이 승자에 의해 거침없이 왜곡되어진

역사와 인물에 대한 시선을 바로 잡도록 한다.

아무리 역사란 이긴 자가 쓰고 패배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만

뒤늦게나마 역사를 바로세워야 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의 역사를 제단하는 축으로 오늘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왜곡된 과거를 계승한 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사회정의 또한 훼손되기 마련이다.

고우영 「초한지」는 항우와 한신, 그리고 장량에게 덧씌워진

패배자의 그림자를 벗어나서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초한전 시대의 역사를 조망하게 하는 책이다.

중국 고대사에 대한 만화로는 고우영 화백을 따라갈 사람이 없고,

아마도 앞으로도 나타나기 어렵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