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격랑이 넘실거린다는 점에서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김훈...

기자로서 누구보다 섬세하게 현상과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가
돌연 사표를 내고 칩거하여 
절망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글을 선사한다.



<칼의 노래>

그가 그려내는 사나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 바로 그였다.

그리고, 동시에 끝없이 밀려오는 절망의 파도에 힘겨워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이며,
이 책을 읽는 독자이다.



이순신...

반 만년 한민족의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이지만,
그 자신은 그의 일기의 표현에서처럼
그야말로 '사는 게 죽는 것 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평강을 뒤로한 채
최선을 다해 왜적을 막아내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열등감에 시달린 채 충신들을 의심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임금과
자신들의 세력에 위해가 될 꺼라 생각하여 참소하는 조정 중신들의
모함 뿐이었다.

오랜 전란의 참화 속에서
유일하게 백성들을 살피는 그에게 매달리는 
불쌍한 조선 백성들...

... 그의 가슴에 칼이 울었다.


마침내...

1598년 11월 19일 노량 앞바다에서
도망치는 왜적들을 섬멸하고
그의 칼은 적의 피로 온 바다를 물들이겠다는
칼의 노래를 부른다.



참 독특한 소설이다.

1인칭 관점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역할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이순신인냥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섬세하게 보이고, 들리고, 냄새나는 것들을 써 나가면서
독자들 스스로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되도록 한다.

펜을 든 사람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전지전능함을 스스로 내려 놓았다는 점이
이 책의 특이한 점이다.



끝 없이 밀려오는 절망의 파도를
온 몸으로 이겨낸 이순신 장군...

그는 절망을 부인하지도,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절망을 인정하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이것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