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절정 이후에는 자리를 떠서 잘 보지 않았다.

예고 된 쇠퇴와 결말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라가면서, 달도 차면 기우는 것처럼
이야기 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 또한 기울어지고 끝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음을 배우지만...

... 여전히 쇠퇴와 종말을 바라보는 심사는 좋지 않다.



시오노 나나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_하편>은
아말피, 피사, 그리고 제노바와의 경쟁 끝에 살아남아
’동지중해의 여왕’으로서의 황금기를 누리던 베네치아가
어떻게 기울어지고 종말을 맞게 되었는가를 잔잔하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는 1천년이 넘는 삶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지는 베네치아에 대해
’자연사했다’는 표현을 붙인다.



물론, 베네치아의 쇠퇴와 종말의 원인 또한
여러 가지로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구 150만으로 작은 인공섬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그토록 오랜 기간동안 동지중해의 활발한 무역과 
튼튼한 치안이 유지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기에
이러한 쇠퇴와 종말의 원인을 그들 내부로 돌린다는 것은 가혹하다.

터키, 에스파냐,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영토와 인구의 절대강국들의 등장으로  
도저히 황금기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없게 되어 버린 베네치아가
그 생명을 끊는 장본인인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그 고귀함을 잃지 않고 견뎌왔는가를 써 나가는 작가의 글 속에
이들에 대한 애정이 풍성함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강국이란 전쟁이건 평화이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제는 
이미 그런 처지가 아니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광의 조국이 쇠퇴 일로를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눈물 없이 바라 볼 수 없었을 텐데,
약소국의 비애를 꿋꿋이 견뎌내는 베네치아인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아울러, 우리네 인생에서도 이러한 기울어지고 쇠퇴하는 시기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