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역사,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시대와 사회의 대표적인 '영웅들'의 삶과 업적을 통해
바라보는 '엘리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와 사회를 일궈낸 사람은 특정의 몇몇 영웅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 전체라는 '민중주의(다원주의)'이다.

물론, 한 시대와 사회를 이끌어 간 이들의 업적 또한 대단하지만,
그 동안 간과되어 왔던 민중들의 땀과 수고를 기억한다는 측면에서
후자의 관점이 보다 중요하다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을 잘 말해 주는 역사가 바로
이 책 시오노 나나미의 1980년 작 <바다의 도시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베네치아와 함께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피렌체가
특정의 영웅들에 의해 이루어진 역사의 대표라면,
베네치아의 1천년 역사는 몇몇 특정 인물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온 모든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쓰여 온 역사인 것이다.

"'왜 피렌체가 아니고 베네치아공화국의 역사를 쓰는가?'
단테와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낳은 르네상스 문화의 꽃인 피렌체가 아니고
왜 하필이면 베네치아공화국의 역사를 쓰는가라는 이탈리아 친구들의 질문에
나는 마음속으로는  '내가 쓰려는 것은 
르네상스 문명의 알맹이 쪽이오'라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들에게 대답은 이렇게 했다.
'국체를 한 번도 바꾼 일 없이 그 만큼 오래 버틴 나라가 따로 없으니까요.'"

                                               (뒷 날개 저자의 글 인용) 


베네치아는 시작부터 수 많은 민중들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나라이다.

외족의 침입을 피해 갯벌에 수 백만개의 기둥을 박은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왕이나 특정 귀족의 일방적인 지배가 아닌
민중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이들에 의한 공화정으로 1 천년을 이루어 온 나라이다.

가히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까... 놀랍다.

시오노 나나미는 책 전반의 내용을 통해
그들의 시스템이 어떠했는가 하는 미스테리를 찬찬히 풀어간다.

처음에는 너무 천천히 진행되는 듯 하여 읽기 다소 힘들지만,
작가의 독특한 글 솜씨는 어느덧 이런 지루함을 잊어버리고
먼 옛날 서양 한 도시국가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 <바다의 도시 이야기_상편>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그 시대의 해양국가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탈리아의 수 많은 도시국가 중
오직 아말피, 피사, 제노바, 그리고 베네치아 만이
지중해의 교역권을 장악한 해양국가로 활약할 수 있었는데,
그 중 아말피, 피사, 그리고 베네치아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제노바의
흥망성쇠 과정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모든 국가는 반드시 한 번은 전성시대를 맞는다.
그렇지만 전성시대를 몇 번이나 갖는 국가는 보기 드물다.
왜냐하면 한 번의 전성은 자동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6장. 라이벌 제노바' 중에서)


콜럼버스로 대표되는 항해의 영웅들이 즐비했던 제노바를 이겨낸 해양강국 베네치아는,
역사를 이뤄내는 힘은 소수의 뛰어난 영웅이 아닌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임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