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전부터 받기 시작한 GPTI라는 전문인 선교사 훈련에서
훈련 전에 꼭 하는 다짐이 있다.

진행자를 따라 세 번 복창하게 되어 있는 이 멘트는..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주님, 제가 전문인 선교사입니다!"

하나님께 함부로 맹세를 해서는 안 되는데,
지금까지 족히 서른 번은 외쳤었다.


그런데, 실재로 내 삶이 과연 전문인 선교사의 삶인가 의구심이 든다.

이 즈음 지난 6년 5개월 다니던 직장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교회 선교부 주최로
선교학교를 하게 되었고
<족자비안 나이트>의 저자인 손창남 선교사님이
대미를 장식하는 금요일과 토요일 두 번의 초청 강사로 오시게 되어
진행팀의 한 사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세무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면서 학생 사역을 하기 시작하여,
선교사로 부르심 받고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 가서
현지인 학생들로 캠퍼스 사역을 해 나갔던 간증이
너무나 생생하게 담겨 있는 책이었다.

선교사님 훈련 받으신 GMTC가 지금 내가 받고 있는 GPTI와
같은 선교단체인지라 더욱 친근감이 생겼다.

이태웅 목사님 추천사처럼, 너무 재미있고 생생하여
도저히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선교 현장 이야기를 이보다 더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따온 책 이름 답게
현지 대학생과 청년들과의 많은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선교사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내용들을 
인용해 본다.


선교지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 가운데 하나는
내가 유용하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다.

인도네시아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인도네시아 문화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과연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물어봐도,
그 질문에 나 스스로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다.


3년 전 한국에서 선교훈련을 받으면서도 
내 마음속에 있었던 가장 커다란 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선교지에 갔을 때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함께 훈련을 받던 형제가 나에게 질문했다.

"손 형제님, 만약 손 형제님이 선교지에 가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곳에 계속 계시겠습니까,
아니면 본국으로 돌아 오시겠습니까?"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 내게 그 형제가 해답을 주었다.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를 선교지에 머물게 하는 것은 사역의 성패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그곳에 부르셨다고 하는 소명에 대한 순종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렸다.
그렇다. 순종이 제사보다 귀하지 않은가.

사역은 내 조급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진다.

순종에 대한 시험은 기다림을 통해서 나타난다.


포기와 기다림은 다르다.

포기는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다림은 비록 부족하고 상황이 나빠도
하나님이 분명히 하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다.

기다림은 순종이고 포기는 불순종이다. (74, 75쪽)


매사를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현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마저도
그러한 잣대를 들이대지만...

...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철저한 낮아짐과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사용하실 자를 직접 연단하시고 다듬으신다.

선교는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다음
새롭게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다.

내 잣대로 내 삶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의 자리에서 주님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려 드는 가장 나쁜 교만이다.



한번은 참가자가 선교사로서 다른 나라에
이런 죠이 사역을 접목시키려고 할 때 
어떤 원리를 가지고 가면 좋겠냐고 질문했다.

톰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선교사는 원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갈 때는 부채 하나만 달랑 들고 가면 됩니다.

그곳에는 아마 꺼져가는 불씨들이 있을 텐데,
많은 선교사들은 그곳의 불은 꺼버리고
본국에서 새로운 불을 가지고 오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지에 있는 불씨를 살리는 것이 선교사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278쪽)


자기가, 자신이 속한 단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기중심주의는
선교사에게도 여전히 가장 큰 함정이요 문제이다.

진정으로 낮은 자세로 선배 선교사들에게, 또 현지인들에게
배울 자세를 갖춘 선교사가 제대로 된 사역을 할 수 있다.



생애의 전환기에 선교 훈련을 받게 하시고
또 선교부 임원으로 선교학교를 준비하면서 
미리 이 책을 읽게 하심에는 분명한 주님의 뜻이 담겨 있다.

'전문인 선교사'로 주님께 드려지는 인생으로
내 삶을 재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 거듭거듭 물어지는 질문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짐짝처럼 취급 당하면서 힘겨워만 하는 성도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나와 함께 하는 분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