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형 외톨이면서 지식인인 저는 마음, 철학으로 치료한다는 책을 읽고 영감받아 이 오마주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리뷰는 정말 최우수리뷰로 선정해서 도서상품권 5만원 주셔야 합니다. 그만큼 고생했어요 ㅜㅜ

 

 

based on a true story

0. 프롤로그

섬세함에서 박약한 악취가 난다. 탁월함에서 강악의 그림자가 비춘다. 이렇듯 섬세한 것은 탁월한 것과 언뜻 비슷하나, 권력의 사다리에서는 거의 밀려나 있다. 반면 탁월함은 권력의 사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마찬가지로 박약함은 강악에 대응할 수조차도 없다. 나는 지금 통제라는 개념이 완전히 유폐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어떤 제약도, 반대로 그 어떤 무제약도 통하지 않는 세계-내-존재들의 대서사시를 필사하고자 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다.

만남, 그 만남을 위해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미로를 서성였다. 내가 꿈꿔온 대상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다만 끝없는 만남을 기원했고, 그것에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무엇을 지향했는가. 다만 존재에 끊임없이 유폐될 뿐이었고, 시간적 타자성은 하릴없이 나를 유령처럼 맴돌며 나의 최후를, 나의 파멸을 꿈꿔왔다. 어느 곳에 나의 순수가, 그 분수 넘치는 정합성의 이상이, 최적을 뛰어넘는 인간성의 유미가 마치 그림자처럼, 하나의 사영(射影)처럼 내 무명 속에 진실로 머무르길 원하는가.

하기야 기약 없이 나는 어느 모험가처럼 나 자신의 원형이 되려고 했다. 이방인은 동일자가 되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는 목적 앞에서 침묵했다. 그 상황들은 마치 이 람보르기니 8mg 담배향기처럼 독했다. 나는 이 순간 속에서 언제나 탈출을 꿈꿔왔다. 멀리 이르려는 포부 같은 건 당최 없었다. 나는 단지 진심으로 흐느끼고 폐부가 끊어지는 우울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리고 좀더 고결한 빛깔 속에서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비애와 함께하고 싶었다. 허나 흘러간 세월은 내가 모든 것 앞에서 우회하고, 전이로 이행해서 니체의 회의주의가 아닌, 소세키 문학의 화두인 나오는 신념인, 목적의 대상을 포기하고 초연하게 마음속에 묻어두어 궁극적으로 고결함을 위한 패배자에 대해 자부했다.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해후, 삶의 열린 조건들 앞에서 운명은 모든 문을 걸어 잠갔다. 지나간 세월이 비록 나를 존재 안에 유폐시켰을지언정, 나의 감수성이 세운 뜻은 이러한 시간의 항상성을 자유의지의 필연적 본질로 가득 채우고, 여기에는 시달리다 못해 나의 이야기를, 아니 차라리 한 자아의 특칭을 펜으로써 투사하기 위한 기도가 있다. 이는 각인의 전개에 영원성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돌연한 늙음에 어떤 계기의 최소한의 연장이 있단 말인가? 단지 무한한 변양이 있고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 어떤 것도 동일성에 부합되는 게 없다. 그러되 한 가지 동일자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예술적 사랑이다.

일견 무서울 정도로 비춰지는 나와 세상이 만들어나가는 이형異形. 나는 이미 이곳에 없다. 세계-내-존재는 세계의 외부로 망명한다. 어떤 관념론의 근저에서 내가 죽어버리는 게 아니다. 한갓 유위변전하는 생각의 성질에 나를 맡겨두려는 것이 아니다. 그래봤자 사물과 함께 서서히 소멸하는 게 사고이며 정신의 체계는 육신과 적멸을 같이한다. 나는 정말로 이방인으로써 모든 것에 대한 이질감, 생경함을 느낀다.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다. 빠른 문명의 진보 속에서 존재자는 그와 함께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동시대와 함께 잊혀 갈 뿐이다.

들뢰즈가 말한 상황의 모럴에 의거해 : 모텔이었다. 정신병자 모임 카페인 [파란마음 하얀마음]에서 수윤이라는 여자애가 내가 여자친구 구한다는 글을 보고 찾아왔다. 사당에서 경기도 양주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 삐쩍 꼴아 있었다. 수수했다. 못생긴 얼굴은 과히 아니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분명 거기 있었다. 그녀는 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목소리만 듣고. 나는 생전 처음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여기는 모텔 안이다. 그녀가 비용을 지불했다. 물론 여기 오기까지 개인커피숍에서 샷5개 추가해 총 7개 추가해 화이트모카를 마셨다. (양주 시내에 훌륭한 개인 카페가 있다. 난 주로 스틸녹스를 타러 가다가 들린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내과전공의와 의식을 교류하고, 즉 신체적 조언을 받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의학지식을 의사에게 말해서 검증받고-전문지식과 대증지식이 교류하는 일, 동시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틸녹스를 처방받는 일은 정말로 보람차다. 구석에 쌓인 고독이 싹 날라 가는 느낌이며, 내게 거대한 가능성의 빛이 나를 내리쬠에 나는 한 명의 학인으로서, 한 명의 젊은이로서, 한 명의 개체(개인)로서, 철학과 문예에 대한 야심을 품게 된다. 나야말로 독창적이다, 나야말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나야말로 비참한 과거의 운명 속에서도 선택된 혁명적인 천재다. 그러니까 나라는 주체가 운명에 의해, 혹은 나를 착취하는 타인에 의해 이리저리 고해를 겪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는 나 스스로 운명의 주체가 되어 젊음의 자유를 누리고, 지식과 지혜로 말미암아 나의 정신과약도 내가 조합하고—따라서 나의 정신 관리자도 나인 셈이다. 배우고 또 배워서 탁마해온 정신세계를 이용하여 인간실존의 극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날이 올 것이다. 비록 나는 아직까지 부족함이 많고 결함이 많은 인간이며, 덜 성숙했고 자주 동요한다. 하지만, 무릇 어디까지나 정신에 의지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분명 ‘길’이 있는 법이다. 카페에는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 같은 전문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원액을 조심스럽게 추출한다. 나는 간수치를 내리고, 안정제 때문에 흐릿한 정신을 없애려고, 당뇨병도 예방하고 니코틴도 분해해주는 ‘설탕 안 탄 7Shot 까페라떼’를 즐긴다. 내가 그 바리스타청년이 선하게 생기고 동생 같은 친근감이 들어 먼저 접근했다.

“전 커피가 너무 좋아요. 스무 살 때 처음 접한 에스프레소는 환상적인 기분을 느끼게 했죠. 마치 기분이 너무 업 돼서 이거 마약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황홀해지고, 당장에 인류를 구원할거라고, 여기 커피는 최고라고 주인장에게 말했죠.”

그는 미소를 짓더니

“하하하, 에스프레소는 정말 육체건강이나 정신건강에 좋답니다. 제가 전문바리스타긴 하지만 실력은 별로예요.”

그러나 그의 말과 반대로 설탕 안 탄 7shot 까페라떼는 매우 진한 향기와 부드러운 맛을 함유하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와 대화하는 게 행복했다. 마치 친구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모를 것이다. 내가 내과에서 향정신성 약물인 스틸녹스를 지러 가면서 기분전환 차 이 카페를 들린다는 것을. 스틸녹스의 약동학적 측면에서 최고용량은 몸무게에 따라 3알까지 처방할 수 있다. 근데 병신 같은 정부에서 그걸 차단시켜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의사에게 dur을 사용하게 해서 2알이상 처방가능한 실력자이다. 왜냐하면 나는 정신과 정교수들을 많이 다뤄봤기 때문이다. 의사를 다루는 것만큼 재밌으면서 쉬운 건 없다. 이리하여 마음만 먹으면 일일 3알까지도 처방이 가능하다. 내가 수면제 중독잔가? 아니다. 나는 단지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180cm, 120kg) 약물이 혈관에 돌아야 하는 분포용적이 너무 넓어 수면제가 1알이 아니라 3알이 필요할 뿐이다. 무릇 자본의 힘은 법의 힘을 뛰어넘는다. 기업이 정부를 세우며 조정이고, 정부는 입법한다. 재계는 정계를 만들고, 매수하고, 조종한다. 정치가 경제의 꼭두각시가 된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회주의 제창은 프랑스대혁명과 비슷한 시간에 있는 듯 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희미하다. 오늘날 변증법적 유물론은 포퓰리즘과 동의어적인 관념이 되었다. 과거 독재정부에서 고문당하고 잔인하게 군인들에게 죽은 꽃 같은 젊은이들은 초자본주의 사회인 지금, 식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오늘의 젊은이들(나와 비슷한)에게 기만당하고 있다.) 그리고 람보르기니 8mg를 피웠다. 독한 각성제끼리의 결합이었다. 내 몸은 그녀와 문학상 얘기에 대해 시시콜콜 말하는 걸로 달아있었으면서도 독한 각성제인 커피와 담배로 말초신경과 중추신경은 참을성을 상실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녀가 택한 2차 데이트 코스는 모텔이었다. 이게 무슨 기이한 원 나잇 스텐드? 섹스프렌드 구하는 카페도 아니고? 그랬다. 그녀는 걸레이자 정신분열증환자였으며, 그와는 별개로 나중에 가서 알지만 꽃뱀 같은 것도 아니고 사이코패스였다. 그게 내가 그녀를 죽일 번한 이유이다.

모텔은 깨끗했다. 단지 좁아터진 게 단점이었다. 입구 바로 왼쪽으로 화장실이 있었고 2인용 침대에 냉장고인 작은 박스가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이미 그녀는 검정색 망사팬티만을 입은 채 전라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은 거구인 나보다도 작았고, 마치 나보코프의 로리타를 연상시키는 듯했다. 그리고 망사팬티에 그녀의 음모가, 얼굴의 수수함과 다르게 수북이 자라있는 걸 보고, 여자 역시 이 자연세계의 원숭이에 지나지 않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달콤한 그녀의 속살이 얼마나 쫄깃쫄깃한지, 그녀의 단백질덩어리가 얼마나 보드라운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녀가 꽃뱀일수도 있는 이상 나는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최소한 수윤이에 대해서만큼은, 우연과 상극에 대치되는 필연의 힘뿐이었다. 따라서 우연적인 것은 절대 없다. 만일 모든 것을 물리적 우연성으로 설명한다면, 현재 자신의 존재까지, 한낱 우주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우연’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이라는 개체가 ‘우연의 총체’라고 직설적으로 믿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성에 의거하고, 그것은 즉흥적이고 순간적이다. ‘나’라는 존재자를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일해서 완전한 자기동일성을 추출해야 한다. 만일 이 모든 공간과 시간의 요소가 단순히 우연으로 말미암는다면, 지금의 당신은 과거의 물리적 우연적 요소들로 성립된 ‘하나의 우연’이고, 당신의 미래 역시 ‘하나의 우연’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보다, 언제 어디서 사고사나, 엮여서 교도소에 갈 확률이나, 질병으로 우리나 가족 성원 중 한 두 명이 죽을 확률이 높은 바를 인정하고, 나아가 자신과 세계에 대한 엄청난 불확실성을,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영화 ‘엽문’에서 엽문은 육체적으로 천재적이고 탁월한 위치에 서 있다. 하지만 엽문은 자신이 키운 제자가 자신의 절대적인 격투초인의 탁월성을 인정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은 이렇지만 내 실력이 세월의 풍파 속에 언제까지 갈 것 같은가?”. 여기서 우리는 이 말에 다음과 같이 귀납할 수 있다.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이는 지성, 정신 역시 마찬가지다. 기적과 같은 두뇌의 철학자 역시 점차 늙어가면서 그 힘을 잃고, 마지막에는 제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는다. 마지막에는 아무도 곁에 없이 모르는 간호사 앞에서 숨통이 끊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점차 늙어가면서 그는 자신의 지혜가 자기 자신이 창조한 독보적인 능력이 아니라, 어떤 절대자가 자신에게 준 선물임을 천천히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그리고 깨닫는다. 자기 자신의 실존은 우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획된 것이고 그럼으로써 거기에서 자기영혼의 의미를 탐색하거니와 진정한 지혜는, 그러니까 진실로 멀리 다다르는 것은, 젊음 보다 긴 늙음 앞에서 천천히 노화되어가고 변양되어 가는 운명적인 요소들 앞에서, 인간적 실재의 불가지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유물론적 과학으로 파악한 우연이라는 요소를 믿는 것보다, 현대물리철학에서 회고적으로 말하고 있는 우주의 운명적 요소를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모두가 부나 법 앞에 평등하다고 좃 같은 소리를 한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있어 부라는 것은, 또 훌륭한 교육과 인간적 사랑은 운명적인 요소가 절대적이다. 따뜻한 가정 안에서 풍요롭게 크고,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신의 힘이 부모의 부에서 나오는 걸 망각하는 젊은이는, 범죄자가 되기보다는 더 부자가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가장 부자가 되기 쉽고 리스크가 없는 방법은 상속받는 것이다. 반면 서민이나 범죄자는 여러 가지로 교양가가 되기 어렵다. 자기 자신은 정말로 부드러운 교양가가 되어 남들 앞에 적은 돈 따위로 천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정말로 완전한 인격가가 되고 싶다면, 그들은 돈으로 그것을 사면 그만이다. 내가 이런 말들을 주구장창 늘어놓는 이유는, 한 개체의 인생은 그 어떤 임의의 것도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운명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바흐는 하나님을 질서의 신이라고 언급했다. 이 세계와 비전은 촘촘히 계획되어 있고, 그것은 절대자인 그분만이 아실 것이다. 즉 심급으로서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세계를 반영하고, 세계의 주권자다. 모든 걸 망라하는 최고의 철학적 천재도 하나님 앞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뇌는 자신의 용적의 한계 안에서 볼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이는 현대 인식론의 기초이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수면 위로 떠오르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리고 우리의 뇌, 우리의 정신은 어떤 운명에 따라 그 시동이 꺼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본디 뇌가 정신의 전체는 아니다. 뇌는 세계와 조응하면서 자신에 대한 인식의 불을 지피고, 뇌가 존재하는 영역이 세계인 한, 뇌는 어디까지나 온전한 정신 그 자체일 수는 없다. 그리고 뇌가 육체인 한, 뇌는 천천히 늙는다. 늙어가면서 인간은 판단력을 점차 상실하고, 고독 속에서 자신의 개체적 가사성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 돼버린다. 인생은 임상이다.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 지식인들은 발밑에 불도 못 끄는 입만 살은 이론가들이다. 우리에게는 이론(개별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 일반의 집합)이 아니라 실재(임상)를 다스려줄 절대자가 필요하다.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는 게 우연인가? 모든 종교 중 기독교만이 타종교에 극렬한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 게 우연인가? 또 이런 논리들은 상대성을 잃고 전체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니, 요컨대 우리 모두는 평등한 부와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삶은 공교롭게 지탱된다. 운명이 나를 선택했고, 나는 정밀하게 직조된 비전의 길에서 늦게나마 배회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다. 나는 오래도록 죽어있었다. 침침한 무덤 안에서 나는 무상을 배웠다. 그리고 세속은 언제나 내 존재 멀리서 대척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섬세하고 섬뜩한 정신, 짜릿한 생의 지속과 앎을 원했다. 나는 사물의 연장과 존재의 정신적 동일성을 갈구했다. 단절되어 갈가리 조각난 기능으로서의 인생은 악몽이었다. 언어가 필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다듬어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기 때문에 내게는 무엇보다 필요했다. 언어가 의식을 가로지르면서 진정으로 성숙한 정신이 구축되고, 표현과 사유 양자의 차이는 비스듬하게 저편으로 미끄러진다.

글쓰기에는 항상 수많은 고독이 함께하며, 허공에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연쇄적인 표출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쓰고 있는 순간의 율동을 이해하면서 거기에 맞춰 추는 안무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글은 곧 인생의 궤적이자 사고의 회로가 되며, 나아가 영혼을 반영하는 등불이 된다. 이리하여 글과 함께 자아의 원숙함은 바다와 태양의 합일처럼 한결로서 녹아드는 것이다.

빛은 무심하게 번진다. 번지는 농도에 따라 감정의 색깔이 달라지고, 떠올리는 기억의 조각도 그 색채를 달리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우울, 불가해한 생에 대한 슬픔, 무미건조한 권태, 말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것. 이따금 마을 뒤편 시골길에 나가 남의 집 개의 턱 밑을 만져서 부드럽게 얼러준다. 개는 나의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내가 어떤 감정 상태를 가지고 있는 지 직감적으로 판단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개를 무척 좋아했다. 차가운 햇빛이 겨울의 오후에 사영을 그린다. 빈촌의 공기는 순결하다. 오래도록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내게서 결코 도망칠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신을 철저히 개발하고 개척해나가는 수밖에. 탈주로는 막혀있었다. 본디 인생은 흐르는 것이고 이 흐름에 몸을 내맡겨야 한다. 이 흐름을 멈출 수 있는 건 순간적인 것, 한시적인 것에 영원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죽음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것뿐. 따라서 이념의 세계는 현상계의 침투를 막을 수 없고, 드높은 사유는 구체적인 논리에 의해 반박된다.

우울증은 나의 내부를 강렬하게 휘젓는다. 밀려드는 박명은 나를 어설프게 관조하게 만든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방 안을 어슴푸레 밝혀놓지만, 나는 이 방과도, 내 존재와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나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이미 자유의지에 대한 권리의 포기를 선택했다. 사건의 모럴을 관통하는 복합적인 필연성의 구조는 내게 그 어떤 우연도 없다고 지시했고, 돌연 이 삼라만상은 상호조응하는 관계를 따라 유기적으로 구축된 데자뷰의 세계로서 다가왔고, 거기에는 그 어떤 존재자의 자맥질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나는 내 세계에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세계가 나를 너무 선명하게 비추지만, 내가 세계를 구현하기에는 너무나 긴 걸음을, 준비 없는 무분별한 도정을 거쳐 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평생 고독했지만, 그 어떤 타자도 나의 가슴을 어루만져주지 못했다. 의식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의식이 내게 사람들 간의 관계에 대해 자기기만을 선고했다. 나는 진정성에서 소외되었다. 도리어 발을 딛고 일어서서 나를 확립하기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다. 이미 나 자신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잃었고, 나 스스로에게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자명하게 규정할 프레임을 구명할 수 없었다. 일상 속에서 나는 지나치게 탁마되었고, 조심스러워졌다. 이제 나는 어떤 것에 대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비판하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그리고 나에게 묶인 족쇄를 풀 방도를 찾는 중인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의 글쓰기가 아닐까? 이 글쓰기, 이 글쓰기가 나를 이방인이라는 루저에서 전회를 통해 동일자를 만들어낸다. 글쟁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인가? 책을 내지 않고, 워드프로세서로 즉흥적으로 글을 갈겨 써 포털에 글을 올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글쟁이란 하루 중 대개 고독 속에 있다. 대부분의 글쟁이(철학이나 문예, 과학과 대척점에 있는 인문학적이거나 종교와 보수 비판적인 객관론적 관념론이나 변증법적 유물론 등)는 많은 것을 포기한다. 세속적 최대양식인 거대한 돈과, 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위치에서 동떨어지고 골방으로 들어간다, 설혹 소수는 결혼과 연예도 하지만, 대부분은 좁은 사회 관계망 아래서 학계와 출판계 혹은 문예계의 친구와 깊게 지내고, 이 인간관계에서 얻는 만족감과 더불어 독신으로 사는 바가, 유럽이든 한국이든 조상들이 해왔던 것이다. 이들은 영감을 받을 때 자신의 몸이 더러 워도 결코 씻지 않는다. 흐름이 깨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글쟁이들은 고통 속에서 글을 쓴다. 역사 이래 이 개념이 바뀐 적이 있었는가? 대다수의 글들은 관념적이고 현실과 많이 동떨어져 있다. 완전한 논픽션 산문도 인위적인 형식의 기술적 접근이 시도된다. 글쓰기로 말미암아 글쟁이는 자신을 반성하고 회고하고 개진해나갈 수 있다. 자신이 쓴 글은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존재하고, 글쓰기의 행위는 투사投射와 같은 것이다. 곧 그에게는 삶의 의미이자 정신의 집합이고, 삶 자체이다.

사르트르는 글쓰기를 하면서 “기쁨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강력한 각성제인 코리드란을 입에 한 무더기 쑤셔 박고 자기 저서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써내려간 이력이 있다. 그는 글쓰기의 방법론 중 쓰기로서의 사유형성을 논한다. 그러니까 글을 쓰다보면서 언어와 언어, 그리고 뼈대로 깔린 논리는 어떤 체계적인 관념의 질서를 갖고, 나아가 의미형성까지 한다. 나 역시 사르트르처럼 이런 글쓰기의 이상한 현상에 괄목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생각이나 사유보다는 써내려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치 자신도 예상 못하는 음계를 연주하는 음악가처럼 글쓰기에서 사유의 주체적인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글쓰기의 항상성”과도 같다. 글쓰기 자체가 본래적인 것이 될 수 있고, 진眞이 될 수 있다. 단순히 자신을 드러내는 측면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의식의 구조를 전면에 드러내는, 미묘하면서도 자명한 글쓰기를 통해 나 역시 “기쁨을 알았다”.

자신의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언어와 기호로 풀어내는 것은 인간다운 것, 참다운 것이며, 이야말로 선善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수사적인 꾸밈이나 거짓 없이, 따라서 어떠한 기만과 위선도 없는 철두철미하게 진실 된 글쓰기야말로 그 사람을 구원해줄 수 있다. 단순히 언어와 기호의 집합, 무미건조한 나열을 뛰어넘어 끝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그는 문예를 창조하고, 사상을 불러낸다. 쓴다는 것이 비록 많은 고통 아래서 파생되는 것이지만, 무릇 육체적인 노동이 그렇듯 정신적인 노동 역시 순탄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글쓰기는 순전히 차단된 고독안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책을 같이 쓸 수도 있고 논문도 같이 쓸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통적으로 모든 성과며 저자의 실력, 명예와 가치를 단지 한 명의 저자가 한 명의 텍스트를 쓰는 데서 기인한다. 이런 풍토는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글쟁이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손질하는 걸 아주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자기 글에서 그는 왕이며 온전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텍스트의 실력이 떨이진다손 치더라도 그들에게는 자존심이 있고 자부가 있다. 그들 역시 성공을 원하지만, 스스로로 말미암지 않은 성공은 바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도의 불타는 정념이자 열정이니 장인정신에 버금간다 하더라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잔잔한 음악을 들어도 그의 마음 안에는 풀리지 않는 불안 같은 게 있다. 이는 글쓰기의 원동력이지만 정상적으로는 고통이다. 쓴다는 것, 이는 단순히 내뱉는 게 아니다. 침이나 말 따위를 내뱉기는 쉽다. 하지만 정성들여 훌륭하게 예술적이고 혹은 학구적인 글을 형식에 맞춰 쓴다는 건 고등의 작업이다. 글을 쓰는 순간 모든 목적론적 의식의 안개는 걷히고, 진실의 빛이 투명하게 내리쬐는 걸 느끼노라면, 그 누구도 그런 개시, 그런 육박함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창조란 정말이지 기묘한 것이다. 자기학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어떤 측면에서도 이에 다가갈 수 없다. 그렇지만 읽지 않고 쓸 수는 없다. 카페인과 담배는 일종의 자기학대이므로, 다변과 내뱉기로서의 글쓰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 종일 커피와 담배를 한다면, 그 필자에 대한, 정신적 깊이의 문제가 연루할 것이다. 그러니까 좀 단순한 가설이지만, 무릇 질료가 모여 형상을 빚어내듯이(여기에서 빚어내는 행위자는 글쟁이라는 한 명의 존재자일 것이다), 글쓰기에는 임의의 한계도 있을 수 없고 임의의 정합성도 없다.

그리고 작가, 한 위대한 소설가는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녀의 숨결을 기억하고, 언제나 감동적으로 술회하고 흐느끼기까지 한다. 인간은 굴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한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많은 엄밀한 철학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학을 정점에 세우듯이, 작가야말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다. 그래서 진정한 작가는 드문 것이다.

명문대에서 학위를 따거나 박사학위까지 준비하는 자세도, 거기서 얻는 경험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모든 지식인과 문예가는 무엇보다 글쓰기와의 대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립하고 규정하는 ‘독자자적이고 개별적인 행위’, 요컨대 텍스트와의 승부로 말미암아 얻는 종합적인 지해가 거의 당위적인 수준에 근접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글쓰기란 자기동일성에서 시작해서 기호, 언어로 자신의 학구적인 시스템을 반성의 위치에서 대자적인 사유의 호흡을 통해 즉자대자(총체)의 층위까지 개시하는 일련의 정신현상학, 사르트르의 용어를 비꼬아보자면 [집렬체적 타성태]라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록 언어나 기호의 연산이 하나의 균형을 이루어 논리적으로 일정한 체계를 갖추면서 텍스트라는 무한한 형식으로써 투사되더라도, 우리는 그 투사를 단순히 신경증의 일종이라고 치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승화에 가까운 것, 리비도를 좀더 고차원적인 층위로 도약시키는 것, 즉 일종의 변증법적 전환과 같이 그 한계와 엔딩이 없고, 이에 따라 인간정신의 한계도 쉽사리 예단할 수 없거니와, 어찌 보면 인간역사의 줄기찬 과정, 그 피상적인 현실성의 실증주의적 기록까지 망라하는, 그러니까 역사의 가지성과, 그 가지성 안에 숨어있는 인간적 실재의 미시적인 기투까지 연합하여, 무한하고 다양한 이 세계의 종합적 비전을 설명하는 계기(moment)들,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주목하는 글쓰기의 현상학적인 퍼스펙티브라고 일컬을 수 있겠다.

글쓰기의 주제가 일련의 군집체를 이뤄야 한다는 것, 즉 일관성을 가지고 더 깊은 의식지평의 확대를 겸비함과 동시에 대중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은 양을 갖춰야 한다는 건 지식인으로서는 압박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예술의 창작도 마찬가지다. 만일 글쟁이가 글쓰기에 대한 프로페셔널리즘이 없다면, 그 글은 잡다한 산문이나 운문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런 구별도 불가능한 엉성한 낙서가 될지도 모른다. 정작 위대한 글은 산문과 운문의 형식적 구별이 불필요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피네건의 경야, 혹은 말라르메의 작품의 차원에 도달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감히 운문과 산문의 규격을 깨는 데 어떤 자격이 있다고 광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문단을 뒤흔들 정도의 소질은 있어야 그런 규격을 규정할 위치의 자격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게 아닐까.

너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중심화두로 떠오른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런데 정말 나 자신에 대해 알까? 사실 난 글쓰기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런데 정말 글쓰기에 대해 알기는 하는 걸까? 정확한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텍쥐베리가 말했지.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완전한 인식과 지각의 단계일까? 어디서부터 왜곡이 이루어지고, 우리 의식은 어디서부터 정확한 세계파악과 자기 파악, 그리고 그 관계망의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걸까.

봄이라는 계절은 내게 영원한 기다림을 여명의 운무와 같이 채색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