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처음 책을 받아들고서는 잠시 당황했다. 분명히 서점에서 펼쳐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다르게 분량도 두껍고 글씨도 빽빽했기 때문이다. 본문을 펼쳐 몇 자 읽어내려가기 시작하고서야 내가 이 책과 허드슨 테일러의 자서전을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책은 위에 쓴 글대로 읽기 수월한 편에 속하는 책은 아니다. 글씨도 빽빽한 편에 속한다. 내용도 쉬이 읽어내려지지 않는다. 편집도 그리 쉽게 느껴지지는 않게 되어 있다 내가 본 책은 2001년판이라 지금 개정되어 나온 책은 조금 다를지 모르겠지만, 페이지 수가 같은 걸로 보아 큰 변화는 없었던 듯 싶다.
내용이나 이야기 형태의 전개방식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님에도, 지명 등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이 나와 그런지 여하튼 분명 이 책은 잘 읽어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쉽게 읽어지지 않는 문장들과 다소의 지루함(특히나 앞부분)을 극복하고 읽을 가치가 이 책은 충분히, 넘치도록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허드슨 테일러라면 다소간 들어 알고는 있었다. '중국 내륙 선교의 아버지'라든가, '모든 공급을 하늘에 의지한 사람' 정도로 이러저러한 글이나 설교에서 간간히 언급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특히 그가 월급을 지급받는 것과 관련해 사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하였던 일화는 유명하다. 또한 그의 영수증에 항상 새겨 있던 감동적인 문구 <주님은 우리의 깃발> <주님이 채워주시네> 도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전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달랐다. 그가 분명 하나님의 공급하심만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언제나 '풍성함' 속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생애를 -어디까지나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면초가' 가 딱 들어맞을 것이다.

집을 구할 수 없어 헤매기를 수없이 하였고 수중의 돈이 다 떨어져 곤란을 겪은 적도 많았다. 이리저리 쫓겨다니며 목숨의 위협도 수십번이나 받았다. 중국의 닫힌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환경은 열악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고통받으며 밤을 지샌 적도 많았고 심지어 한동안 걸을 수 없게 되어 휠체어나 침대 위에서만 지내야 했던 적도 있었다(후에 친구들의 기도로 그의 다리는 회복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세 자녀와 부인을 자신의 손으로 중국 땅에 묻어야 했다. 고국에서의 도움의 손길과 이해 또한 너무나 부족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공급하심도 기적적으로 수없이 경험하였고, 특히나 말년에 가서는 광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많은 결과들을 얻었지만 그래도 역시 그의 일평생을 외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사면초가' 혹은 '진퇴양난'이었다.

다만 분명하며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고난과 결핍은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고난, 외면적 결핍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HUDSON TAYLOR'S SPIRITUAL SECRET 인데 한국판의 제목이 좀더 공정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책의 백미는 역시 원제의 내용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혹은 활기를 띠는 중반 이후부터이다.

책의 절반 정도를 나는 다소의 지루함을 견디며 읽어야 했다. 그가 품은 하나님과 중국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열정, 스스로를 연단시킨 시간들, 중국에 나가서 열심으로 이루어가는 사역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공급하심만을 의지하였던 믿음 등은 나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했지만 그 이상의 것은 일으키지 못했다. 그냥,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강렬히 느꼈기에 이 정도로 헌신할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의 울림이 다소간 일어나며 나도 그런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고 기도하였지만, 더 이상의 어떠한 영혼 심연의 울림이나 진동은 없었다.

하지만 <변화된 생활>이라는 제목을 지닌 챕터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마음은 서서히 용광로의 쇳덩이처럼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과 몸이 뜨거웠던 것은 단지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수많은 고난을 견디면서 중국 선교에 열심을 내던 허드슨 테일러는 어느 순간부터 지쳐가기 시작한다. 그 내용을 다루는 챕터의 제목은 <어두움의 시절>이다. 제목대로 그의 마음은 어두움을 겪는다.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는 그의 열심은 죄책감과 실망만을 낳는다.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하신 복음과 사랑은 여전히 그의 마음에 가득했지만, 하루종일 주님을 바라보며 무한한 능력을 지닌 그분으로부터 영적 능력을 공급받고자 하는 그의 열심과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그 와중에 그는 지쳐가는 마음을 어머니께 편지로 토로하기도 했다. '...마음마저 병들고 있습니다.....그러나 저는 부족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 편지를 보낸 6개월 후.
그는 먼저 영적 변화를 경험한 동료의 편지를 받고 그도 친구처럼 영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것은 그의 일생을 사로잡는, 그야말로 '일대 변화'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전환점' 이며 결정적으로 허드슨 테일러를 허드슨 테일러 되게 한 변화였다.
책의 말 그대로 우리는 테일러가 어떻게 변화된 생애를 체험하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맥카디 형제의 편지를 읽었을 때 나는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라보았을때 큰 기쁨이 왔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 후 주드 형제는 테일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는 이제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는 노력하고 애쓰며 짐을 지고 살았고 영혼의 안식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 안에서 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일을 하시도록 하며, 이는 큰 차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후 모임에서 말씀을 나눌 때마다 새로운 능력이 그에게서 넘쳐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는 새로운 평화가 그를 장악했습니다. 예전처럼 번민이 그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테일러에게 '변화된 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는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주님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신다"는 복된 사실에 접하고 있었다.

......멍에 대신에 자유, 실패 대신에 조용한 내적 승리, 두려움과 연약함 대신에 주 안에서 느끼는 충분한 안식, 이러한 것들이 그를 지배했다. p159-60

바로 그는 '내면'의 '풍성함'을 얻게 된 것이다. 사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실상 어떤 것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얻기를 갈구한다!) 분명한 것은 그는 포도나무에 가지로써 거하는 법을 실제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그의 외적 삶을 둘러싼 고난들은 그 전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일평생 주님 안에 거하여 안식하는 법, 평안을 누리며 주님을 누리는 기쁨을 잃지 않는다.

테일러의 변화된 생활은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숱한 시련을 통과하여 얻은 결과였다. 불만과 불평의 세월은 지나갔다. 이제는 그리스도로 충만된 생활을 잃지 않았따. 시련이 오고 그 시련은 이전보다 더욱 어려웠지만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넘쳐나는 기쁨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았다.p168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 이것을 지금 입증할 수 있을까? 이 구절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 등의 말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며 이론이 아님을 아는 테일러는 훗날 말했다. "이 진리는 윌 영혼이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 중 가장 큰 진리 중의 하나입니다. p180

그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는 구절의 '마시는'을 강조한다. 물을 마신 자가 아니다. 마시'는' 자인 것이다. 시시로 때때로 갈할 때마다 수시로 주님께 와서 마시는 그것이 기갈을 푸는 방법이다.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는 비결이다. 주님 안에 거하는 법을 실제적으로 알게 된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제가 맞이한 슬픔을 생각하면 저의 마음은 거의 찢어질 듯 아프지만 아내를 슬픔과 고통 없이 데려가셨으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의 눈물은 슬픔이기보다는 기쁨의 눈물입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 자신을 기뻐합니다.......저는 하나님의 뜻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저에게 기쁨이 되며 온전한 것이며 행동으로 보이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달콤한 뜻 안에서 저와 아내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도록 연합될 것입니다....p181

이런 일화도 있다. 중국 몇몇 선교 지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테일러가 혼자 있고 싶어할 것 같아 그의 사무실을 떠나려던 니콜은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놀란 니콜은 뒤돌아서며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동료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휘파람이 나옵니까?"
이때 테일러는 조용히 대답했다.
"니콜 형제, 우리가 근심하고 고민한다고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까?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일도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무거운 마음을 주님께 맡깁시다."p214

이 책의 원제가 어찌하여 허드슨 테일러의 spiritual secret인지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책의 저자-그의 아들 부부-가 강조하고자 한 것도 이 것이 아니었을까 싶고 이 책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부분도 바로 후반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전의 책의 내용들도 감동적이고 그의 영혼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허드슨 테일러라 하면 항상 선교의 아버지, 물질적 공급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라는 그의 외적인 모습에 기인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이토록 내면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놀라운 비밀을 간직한 사람인 줄 몰랐다.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았던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마음의 평안과 안식이 지금 이 세상에서는 가능하다고 믿지를 못했었습니다. 천국은 이곳 지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경우 하늘과 땅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p184

그렇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주요한 키워드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아닐까 ?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그분의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전진할 힘을 얻어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는 것 .. 그 모든 힘의 원천은 인간이 누리는 하나님의 임재에서 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갈망하던 주제와 관련해 은혜를 받았다.
단지 외적으로 많은 성취를 한 사람, 그 노력을 본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가, 부족하지만 나의 갈망이며 한가지 소원이라면 이랄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그토록 깊고 끝없이 유지했던 하나님의, 하나님의 임재의 사람이었다니.

역시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허황된 공상이나 상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실체가 있는 분명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고 위로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 품은 소망 또한 더욱 강렬하게 다질 수 있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면 갈망하는 또 다른 자에게 임하여주지 않으실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분은 신실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도 그분의 자녀와의 친밀한 사귐을 갈망하시는 분이시니 말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신비가의 몽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추구하여야 할 가장 고상하며 아름다운 목표, 삶을 누림의 원천, 실제적이고도 현실적인 그것 !^^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만남을 추구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거역할 수 없는 폭포수와도 같이 진하게 실제적으로 체험될 그 날을 소망한다

주 예수님, 제 안에 항상 살아계시고
분명한 현실이 되게 하소서.
보이는 어떤 외적 물질보다
예리한 믿음의 눈에 더욱 잘 보이게 하소서.
세상의 가장 돈독한 우정보다
더욱 친근하고 더욱 가깝게 하소서.p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