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나의 삼촌 브루스 리」이소룡이 맞서 싸운 상대는 누구였나 (e-book)

 

 

 

 이 소설은 오묘하게도 여름과 잘 어울린다. 이열치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제압하는 화끈한 쌍절곤 액션과 무더위를 잊게 하는 천명관 작가의 입담,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에 대한 오싹함이 잘 버무려져 있다. 「고래」라는 문학의 통념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며 화제를 몰고 왔던 작가는 여전히 재밌고 흡입력 있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다만, 「고래」를 읽으며 느낄 수 있었던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감상보다 조금 더 선명한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점이 다르다. 

 이것은 '무엇을 쓰느냐' 하는 문제보다 '어떻게 쓰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느껴진 과거 작품의 단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면면을 타협할 수 있도록 개선시켰다고 본다. 그렇다면 천명관 작가만의 개성이 퇴색되어 버린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는 여전히 그만의 재치와 유머가 가득 담겨 있다.  

   

 이소룡의 사망 소식이 들려온 날, 뱀 한 마리를 잡아다가 그의 제사를 지내며 명복을 빌어준 3명의 소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이소룡에 열광했고, 그처럼 무도인의 걷길 바라고 있었는데 그들 중 특별히 이소룡을 추종하며 구원을 바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게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 '나의 삼촌'이다. 

 이야기는 화자인 '나'의 시선으로 삼촌을 바라보며 전개된다. 삼촌은 할아버지가 바깥살림을 차려서 낳은 서자로 들어와 어릴 때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중심을 가지지 못한 가짜로의 삶을 살다 이소룡을 만나게 된다. 이소룡이 그의 뿌리가 되어 여러 갈래 가지를 치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된 열매를 맺는 법이 없이 시들 뿐이다.

 그가 끝내 이기지 못한 상대는 이소룡 영화에서 나오는 일본 공수도 고수도 아니고, 마약을 판매하는 악덕 사장도 아니었다. 근대화라는 바람이 만들어낸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소설은, 한 개인이 어떻게 근대화의 바람에 쓰러지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에게 생이란 어떤 것이 됐든 감당하기에 늘 너무 벅찬 현실이었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린다. 삼촌에게 이소룡 대역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홍콩행을 알선해준 중국집 여사장, 일명 '마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 난 중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냐,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지. 생긴 건 여자지만 남자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젊지도 않지만 아직 늙은이는 아냐. 그게 바로 지금의 내 인생인데, 그럼 도데체 난 뭐지? 

P. 317

 

 삼촌은 무도인도 아니었고, 깡패도 아니었다. 빨갱이는 아니었지만 열렬한 애국자도 아니었다. 영화에 나오기도 하지만 영화 배우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 시절 사람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에 의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들로 살아가고 있었다. 

 

 도저히 맞설 수 없는 현실은 괴기하고 부자연스러우며, 흉측하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항상 유머가 가득하고 재치가 튀어넘치며 최고의 입담꾼 '천명관 작가'라는 수식어를 돋보이게 한다. 

 

 그녀는 집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화초를 키우는 아내의 역할이 아니라, 바로 집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화초를 키우는 아내에게 싫증을 느꼈을 때 잠시 한눈을 팔기에 적당한 여자였다.

P. 82 

 

 아둥바둥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삶에 눈물짓게 하는가 하면 우스꽝스러운 행태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듯, 삼촌의 출소를 맞이하러 그동안의 등장인물들이 전부 등장하는 마지막 결말은 사뭇 감동적이며 소설과 영화를 절묘히 혼합시킨 신선한 감각이 들게 한다. 

  근대화는 이미 진행 됐고 우리가 맞서야 될 상대는 그의 삼촌과 다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생은 벅차기만하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삼촌이 보여준 삶은, 우리가 쌍절곤을 휘두르며 미친놈 소릴 듣게 까지야 못하겠지만 마음 속으로라도 '아비요!!'하고 외치며 아침을 시작할 한 걸음 정도는 만들어준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