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하루키의 마지막 상실 이야기

 

 여러가지로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 특히나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 이전의 소설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시작해서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으로 정점을 찍은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결핍된 감정을 지우지 못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거 같은 생각을 말끔히 매듭짓고 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그동안 잃어버리고 소멸해버린 것들, 다시 채우지 못할 거라 생각 했던 결핍과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마무리 투수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상실이니 결핍이니 그동안 이어져오던 하루키 상실 이야기의 마지막이라느니, 그런 얘기 전부 제외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봐도 재밌다. 하루키는 작품 곳곳에 넌지시 능글맞은 표정으로 알게 모르게 장난을 친다. 소설은 첫 시작을 시작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지메라는 인물의 탄생 독백으로 시작한다. 마치 주인공이 아닌 소설 자체의 탄생과 시작이 연상된다. 무언가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단계의 에너지, 원동력을 불어넣는 쾌활하고 유쾌한 시작이다.

 또한 '열두 살의 첫사랑'이라는 소제목을 붙여 설레임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소설의 도입부로서 싱긋 웃게 만드는 장난스러움과 역시나 기분좋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하루키의 역량에 감탄한다.

 

 내가 태어난 날은 1957년 1월 4일이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든 첫 해, 첫 달, 첫 주인셈이다. 기념할 만한 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시작'이라는 의미의 '하지메'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그 이름 말고는 내 출생과 관련하여 특별히 내세울만한 건 거의 아무것도 없다. 

P. 7

 

 서른일곱 살이 된 주인공은 평범한 가정을 꾸려 아무 걱정, 근심없는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간다. 어느 날, 25년 만에 초등학교 시절 동급생 시마모토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사로잡혀, 쥐고 있던 많은 평범함들을 손에서 놓아버리게 된다. 그녀와 인상깊은 교감을 하지만, 그녀는 주인공이 잠든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주인공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며 다시 한번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그곳 역시 시베리아의 허허벌판처럼 아무것도 없을지 모를 곳이지만, 태양의 서쪽으로 빛이 있는 곳으로 희망을 찾아 가는 이야기는 치유와 구원을 뜻한다. 고도 성장을 통해 안락한 인생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무언가 중요한 상실과 결핍을 시마모토라는 연인에게 투영시킨 하루키의 감각이 기이하면서도 탁월하다. 하루키 소설의 중요 키워드 '상실'을 완성짓고 마무리하면서 라이트하게 읽을 수 있다. 

 

  "사실 난 말이지, 어렸을 적에 이 레코드를 들으면서 국경의 남쪽에는 도데체 뭐가 있을까 하고 늘 불가사의하게 생각했었거든." 나는 말했다.

  "나도 그래."라고 시마모토는 말했다.

  "어른이 되어 영어 가사를 읽어보고 굉장히 실망했어. 그냥 멕시코를 노래한 것뿐이잖아. 국경의 남쪽에는 더 굉장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P. 272

 

 그들이 바라던 국경의 남쪽이라는 이상향에는 아무것도 없는, 보이지 않는 이상향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세상에 미치는 영향, 세상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뭔지 알 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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