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자다.

스스로를 '편지 여행자' 라고 부른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이 여행은 눈먼 개와 함께 시작되었다.

'도와줘. 이리와줘' 와 같이 '와줘' 라는 단어에서 탄생한 맹인 안내견이었던 '와조' 와 함께 말이다. 시각장애인이셨던 할아버지의 안내견이었던 와조는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시력을 서서히 잃기 시작하더니 결국 눈이 완전히 멀고 말았다. '나' 는 이 눈먼 개와 함께 발 닫는데로, 마음 가는데로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모텔에서 하룻밤을 잔다. 잠 자기전에 하는 의식과도 같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편지쓰기. 그래서 '편지 여행자' 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이상한 남자. '나'.

'나' 는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름대신 번호를 매기고 주소를 물어본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주소를 가르쳐 주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하루에 한명 정도는 주소를 알려주곤 했다. '나' 는 잠자기 전. 그 날 여행지에서 생각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마치 다음날이 되거나, 여행지에서 떠나면 그날의 그 마음이 싹 사라져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 에게 '글' 이란 그런 것이다. 마음. 생각. 느낌. 혹은, 영혼이라고 부를만한 그것. 그것을, 여행을 통해 만난, 누군지도 모르는. 이름도 아닌 번호를 매겼던 그 사람들에게 보내준다. 지금은 떠나있지만, 언젠가 돌아갈 그 집 주소를 적어서.

아침이 되면 옆집에 사는 친구녀석에게 전화를 건다.

"우리집에 온 편지 없니?"

여행을 떠난지 어언 3년.

3년간, 친구녀석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나' 에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와조와 단둘이던 여행에 자신을 소설가라고 소개한 한 여자가 끼어들었다. '치약과 비누' 라는 요상한 제목의. 주인공이 치약과 비누를 먹는다는 요상한 내용의 책을 팔던 여자였다. 지하철에서 만난 이 여자를, '나' 는 단순한 책 파는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뜻밖에도 자신이 쓴 책을 스스로 팔고 있는, 게다가 그 책 역시 자신이 직접 찍기도 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나' 는 이 여자의 난입이 탐탁치 않았지만, 다른 여행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751이라는 숫자를 부여해 주기로 한다.

단락이 숫자로 구분되어있는 묘한 형식의 작품. 

사람의 이름도 숫자인, '숫자' 가 많이 등장하는 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최근 한국의 현대문학이 가장 큰 화두로 삼고있기도 한 '소통' 을  단순하고도 명징한 매체인 '편지' 를 통해 드러낸다.

'편지' 만큼 '소통' 에 관해 드러낼 수 있는 매체가 또 있을까?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닿았는지, 내 생각과 느낌이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해졌는지 곧바로 알수없는 일방적인 매체. 내가 보낸만큼, 상대방이 보내주어야 가능한 완벽한 '소통' 의 매체.  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내' 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편지'.

누구나 편지를 써본 일이 있을것이다.

때로는 나의 글이 오해되어 읽혀지기도 하고, 답장에 오랜 시일이 걸리면, 내가 무슨 내용의 편지를 썼었는지도 잊게 된다. 네모난 종이에 적혀있는 몇줄의 '글' 을 통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처한 환경과 상황을 유추해야만 올바른 답장을 보내줄 수 있다. 때로는 나의 글이 상대방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큰 실망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한번 보낸 편지는 취소할 수도 없다. 어떤 내용과 어떤 의도를 담고 있든 그 내용은 반드시 상대방에게 전달되고야 만다.  

하지만, 편지를 부치기 전이라면 고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말과 달리, 한번 내뱉은 글은 고칠 수 있다. 신중하게, 천천히, 여러번 생각해서 글을 고치고, 다시 고칠 수 있다. 여차하면 꾸겨서 휴지통에 던져도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내'가 만나는 인물들은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다.

서로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사람들. 나를 스쳐가는 무수한 사람들처럼 '내' 가 여행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 그런 사람들. '나' 는 그런 사람들에게 '소통' 을 제의한다. 주소를 물어보고, 편지를 쓴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들은 답장을 보내오지 않는다.

이 작품속에서 주인공인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우리 자신이다. 고등학생, 급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맘씨좋은 아저씨, 뭔가 다른사람과 다른 꿈을 가지고 독특한 삶을 꿈꾸는 예술가, 고시원을 전전하는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 등.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대단히 보편적이고, 섬세하다.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디테일하지 않지만 쉽게 다가온다.

그들 각각의 모습은, 각자 자신들의 삶을 말하고 있다. 그들의 삶은 모두 단순히 '삶' 이지만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그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남들과 완전하게 다른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그들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다는 것' 이고, 완전하게 타인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누구나 답장을 받지 못해본 일이 있을것이다.

나 역시 군대에서 한참 편지를 주고받을때, 어느순간 답장이 뚝 끊긴 친구의 경우가 있다.

기다림은 큰 실망과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럴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수많은 변명들을 생각해낸다.

그들의 삶이 너무 바빠서 생각하기 힘들었을거야. 쓰려고 쓰려고 하다가 계속 깜빡 잊고, 깜빡 잊은걸거야. 아니, 어디가 아픈건 아닐까? 종이를 들고, 연필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픈건 아닐까? 내 편지의 내용이 맘에 안들었나??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답장을 쓰기 싫어진걸까? 아니면, 이제 나랑 편지를 주고받고 싶지 않다는 걸까??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 의 생각처럼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그리 쉽지 않다고 느끼는 걸까? 휴대폰도, 이메일도 보편화된 이러한 세대에게 손으로 꼭꼭 눌러쓴 글자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었을까?

소통이란 그렇듯 힘든 행위이다.

언어와 글로 소통을 할 수 있는 인간들임에도, 인간과 인간사이의 소통을 그렇듯 많은 용기와, 인내와, 상처를 수반한다.

작품속에서 '내'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대상인 '와조'는 개이다. 언어도 없고, 소통이 불가능한 '개'.

하지만, 역시 언어와 글이 없는 개와도 소통은 가능하다.

용기와 인내. 상처를 수반한다면 말이다. 물론 애정과 관심은 기본이다.

사람은 고독할 수 밖에 없다. 결국 가족들은 다 죽기 마련이고, 애정은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사랑을 쏟고, 애정을 쏟았던 대상들은 하루아침에 죽어 없어져버리기도 한다. 하룻사이에 무너져버린 무역센터 빌딩처럼. 지금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죽기 마련이니, 살아있는 동안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요소이리라.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고독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고 있다.

나만 고독한 사람이 아니고, 너도 고독한 사람이?? 이토록 바글바글 거리는데, 그 삶이 과연 외롭기만 할까?

사람들은 스스로가 고독하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렇기때문에, 인류에게 외로움이란 가장 크고도 무서운 것이다. 누구나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소설가 김연수의 작품 제목처럼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나도 다 안다. 네가 얼마나 외로운지. 그 외로움을 얼마나 두려워 하는지.

이 작품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결말로 나아간다.

책 뒷표지에 적힌 문학 평론가 '서영채' 님의 한구절 처럼 '뻔히 속는 줄 알면서도' , 나 역시 마음이 크게 휘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