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나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연초에 100권을 목표로 생각했었는데 어찌하다보니 300권 이상 읽게 되었다. 책 읽는데 시간을 많이 빼앗기다보니 결국 작년에 내가 꼭 해야만했던일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올해는 작년보다 책 읽는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이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그게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책을 워낙 좋아하고 또한 책욕심이 많아서 말이다. 어쨌든 작년에 보았던 많은 책들중에서 가장 많이 본 단일 작가의 책은 단연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책과 관련하여 작년 한해 이룬 성과는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도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워낙 좋아하지만 책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었다. 2008년까지는 여러가지 사정상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으니 말이다. 
 

2008년 가을쯤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사람이 쓴 서평을 읽게 된 것이다. 그 이후 책 카페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결국 2009년 1월 도서관에서 그의 책 한권을 빌리게 되었다. 바로 '회랑정 살인사건'이란 책이었다. 사실 내가 소란스러운 곳에서는 책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인데, 빌리자마자 도서관 구석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몰입이 잘 되었고,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그렇게 집에 와서 내 책상의 책꽂이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책꽂이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라는 책이 버젓이 꽂혀 있는 것이었다. 2006년인가 2007년인가 인터넷 서점의 신간 코너를 돌아다니던 중 내용이 흥미로워보여서 구입했던 책이었는데 그 책이 히가시노의 책이었다니 내가 책 하나는 잘 고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거의 다 만나본거 같다. 그가 다작 작가라는게 항상 고맙게 느껴진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자주 접하다보니 어느순간 익숙해져버렸다. 추리소설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게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어떤 트릭을 사용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느정도는 짐작해 볼 수준은 된거 같다. 그러면서 어느샌가 그의 책을 보면서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나에게 경종을 울린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 '내가 그를 죽였다'였다. 여느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 저자는 범인이 누군지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군데군데 힌트만 줄 뿐이다. 이 책은 유력한 용의자 3인의 입장에서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헛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책 마지막 페이지에서 가가형사는 말한다. "범인은 당신입니다." 이걸로 끝이다.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알 수가 없다. 다행히 미스터리 작품의 평론을 맡고 있는 니시가미 신타란 사람의 추리 안내서(봉인 해설) 3장이 첨부되어있다. 물론 거기에도 직접적으로 범인을 밝히지는 않는다. 다만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할 뿐이다. 추리 안내서를 읽고서도 범인을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의문을 해소할 수가 있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뛰어난 작가였다. 이런 책을 만날수가 있어서 행복하다. 역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거 같다.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그의 작품은 제법 있는거 같은데 어서 빨리 그 책들이 다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도 새로운 작품을 더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추리소설은 나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이래서 내가 여행 관련 책들과 함께 추리소설을 끊을수가 없다. 아마 이 두 장르는 올해도 내가 보는 책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이고, 독서량을 증가시킬것이 분명하다. 100권을 목표로 하면서 작년보다 책의 양을 줄이기로 마음먹었지만 추리소설과 여행 관련 책들은 어쩔수가 없다. 내가 워낙 좋아하니 말이다. 엊그제 나의 품에 새로 들어온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내 옆에 있는데 펴보기가 두려워진다. 책을 펴는 순간 2시간 이상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