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들고 보니 분량이 무척 얇았다 그냥 단숨에 휘리릭하고 읽어치울 것만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역시나 쉽게 읽히는군하고 나는 생각했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그리 호락호락한 쉽게 읽힐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책장을 덮고 난 뒤 그 순간부터 길고 아련한 여운이 내 마음속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마치 스파이더맨의 끈끈한 거미줄처럼 내용들이 나의 뇌리에 들러붙어 조금은 고통스럽고 긴 집요한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도대체 왜 싱야는 프랑스에 건너간 것일까

그리고 싱야에게 나타난 안개 속의 여자는 과연 누구일까...이런 단순한 듯하지만 자못 그 의미가 깊은 그런 진지한 코드들을 어린아이들이 읽고 알 수가 있을까 이 책은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쓴 책인데 과연 아이들이 이해할 수가 있을까

 

이 책은 과연 아이들을 위해 쓴 책일까

이런 의문이 내 가슴을 지나쳐 갔다 그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 같다는 일말의 느낌이 나를 지배했다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기란 쉽다 줄거리가 짧은 분량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 있는 그 깊고 깊은 의미를 함께 건져 올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은 단순하게 쓰여진 동화일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속에 담겨진 인생에 대한 통찰은 동화가 지닌 수용성의 저 너머를 가리키고 있다

인생의 의미와 그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 불가해한 삶의 신비...이것을 2대의 걸친 페인트공의 이야기에서 직조해 나가고 있었다

페인트공이라고 하면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비견할 만한 그런 예술적 직업은 아니지만 이 동화책에서는 훌륭한 예술적 천분을 지닌 예술가로 그리고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직업에 참다운 긍지와 무한한 애정이 있다면 페인트공이 아니라 그 어떤 직업도 예술가와 같을테니까

주인공 싱야의 아버지는 페인트공이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페인트를 칠하다가 죽었다

그리고 싱야 역시 페인트를 칠하며 살아간다 대를 이은 예술과 인생에 대한 경건한 태도...그리고 그 심화된 직업에 대한 이해 속에서 운명이 유전되듯 대를 이어 부자에게 반복된다

운명은 반복되고 아들은 아버지를 이어 같은 일에 종사하고 같은 사명에 헌신하며 그리고 같은 운명에 순종한다

마침내 같은 형태의 결말로서 죽음이 싱야에게 찾아왔을 때 싱야는 불세출의 페인트공이 되어 있었다

마치 아버지가 그렇듯이 싱야 역시 대를 이어 같은 지고한 경지의 예술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같은 운명이 반복되어 나타난 동일한 인생 속의 아버지와 아들의 닮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들은 자신의 삶을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아버지에 대한 동경과 모방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삶을 결정했고 실행했으며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말없이 어둠속의 안내자가 되어 그 삶을 인도하고 이끌어갔다

아들의 삶은 아버지를 닮아 경건했고 신실했으며 아버지의 삶은 저 멀리 푸르른 하늘의 별처럼 숭고하고 고결한 것이었다

 

그리고 신비한 삶의 불가해한 운명에 의해 아들은 아버지처럼 같은 사인으로 동이리하게 숨을 고요히 거둔다

그 죽음은 그러나 슬프거나 참혹스러운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삶의 한 과정같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길을 따라 갔다 그리고 그 자신의 완성을 그 따라간 길에서 참답게 실현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삶과 죽음의 비밀을 부지불식간에 이해했고 또 자신도 완벽하게 그대로 같은 완성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인생은 언제나 알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찬 무한한 깊이를 가진 심연이다

그 심연의 한 끄트머리에서 예술의 길을 간 두 부자가 인생의 그 심오한 비밀과 이치를 말 없는 행동 속에서 마치 선불교처럼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이 책

결코 얇지 않으며 결코 짧지 않은 이 책으로 삶의 수수께끼를 헤아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