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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는 사람의 이름이다

즉 재스퍼 존스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타자이다

그가 살고 있는 호주 어느 시골 지방에선 그는 낯선 이다

소외되고 배제되는 '타자'이다

그는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탕아의 아들인 부랑아이고 또 그의 어머니는 호주인이 아닌 '타자'인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이었고 재스퍼 존스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재스퍼 존스는 돈과 음식과 옷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이다

그런 이 소년에게 아무도 그를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취급하지도 대우하지도 않는다

온 마을의 소녀들은 한 번 쯤은 사귀어 봤으면 하고 몰래 설레지만 또 소년들은 아무도 그를 싸워 이기지 못해 두려워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영웅이자 괴물로 악의 화신으로 암묵적인 동의와 인식하에 결코 이웃으로 배려받지 못한다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그의 친구인 소설속 화자와 그의 여자 친구 둘 뿐이다

그의 실체는 그럼 무엇이었을까

아니 괴물같은 부랑아이건 건실하고 정직한 사람이건 어떤 한 사람의 정확한 정체성을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단점과 장점 악과 선 이런 것을 떠나서 그런 것이 있든 없든 누군가의 완전한 본질을 100%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이런 인간 사이의 분리를 아예 없애야 타인과의 거리에서 오는 온갖 문제와 상처 주는 것을 막을 수 있음으로 급기야 전인류가 하나로 단일군체로 합쳐지는 것을 계획하기까지 한다

인류보완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인류가 하나로 합쳐진다고 해서 그것을 인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또 다른 신생명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치 여러 개의 겹눈이 모여 하나의 눈을 이루는 잠자리 눈과 같은 구조의 그 생명체에게 과연 고통과 고뇌가 없을까

인간과 인간에게 분리가 된 상태로 그 사이에 심연이 있다는 것은 각자의 독자적인 생존과 활동을 보장하는 이로움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분리라는 절대 고독을 인간에게 원죄처럼 주었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바로 그 타인과 즉 타자와의 분리 때문에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사이비 사기꾼 교주 오쇼 라즈니쉬가 한 말이다

오쇼는 말도 못하게 타락한 속물이었지만 종교적 연설에는 천재의 재능이 있었다

아무튼 인간은 바로 분리 때문에 그토록 친구를 찾고 연애를 갈구하며 무언가 취미라도 있어야 하며 킬링 타임용 영화와 게임기를 그리도 찾는다고 오쇼는 말했다

어린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을 때 느끼는 공포는 엄청나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플라톤도 말했지만 원래 인간은 남녀 한몸이었는데 신의 노여움을 사 남자인 사람과 여자인 사람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자인 사람은 원래의 자기 몸을 그리워 해 여자인 사람을 그렇게도 찾고 반대로 여자인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남자인 사람을 그다지도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흥미롭고 뛰어난 성찰이다

존재는 원래는 양극단을 모두 구유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분리되며 그 잃어버린 과정에서 생기는 절대 고독이 모든 사랑의 원인이고동기라는 철학적 우화이다

다시 망나니인 입만 살은 사이비 교주 오쇼 라즈니쉬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해 그렇게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라도 벌어야 하고 바둑이라도 친구와 두거나 하다 못해 혼자 바둑책이라도 보면서 바둑이라도 두어야 하고 게임기로 시간이라도 죽여야 하고 친구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사귀어야만 하며 그리고 그 중에 제일은 짜릿한 쾌락이 따르는 연애라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혼자서 자신과 마주 보며 있음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 문화의 기본 동기가 분리와의 고독이라는 것이다

그렇듯 인간은 인간과 분리되어 홀로 존재한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을 다른 사람은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거나 부모 형제 친구라고 해도 대신 앓아 줄 수 없고 내가 겪을 로또 대박의 운명은 아무리 부모라도 대신 그 운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로또 복권 당첨금을 갈취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소송을 걸 수는 있어도

그래서 인간은 외롭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한 때 유행했던 이 시의 구절은 감상적인 감성팔이가 아니라 나름대로는 진실을 담고 있는 촌철살인의 말이었던 것이다

군중 속에서 그토록 많은 친구들 속에서 그리고 바로 옆에 앉은 연인의 곁에서 이따끔 느끼는 알 수 없는 고독

인간과 인간이 분리된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단순히 그저 양날의 검인 것인가

타인을 질시하고 경계하는 것은 모든 인류와 모든 문화권의 공통적인 습속이고 경향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가장 기초적이고 토대를 이루는 심리일 것이다

본능일지도 모른다

드물게 어떤 문화권은 낯선 이를 몹시 반긴다

아랍권의 어느 나라와 에스키모들은 처음 만난 낯선 방문자에게 자신의 아내를 동침의 대상으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성문화에 대한 도덕이 다른 탓도 있지만 이것은 아마도 낯선 이와 협력해서 살지 않으면 도저히 생존이 불가능한 자연 환경 때문일 이유가 크다

전쟁과 갈등으로 반목하면 모두가 죽고 마는 삶의 토대 위에서는 낯선 이를 반기고 협력하며 협동으로써 공존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 터

타인은 가장 두려운 존재이며 악에 가장 근접한 악의 상징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모든 문화권의 사회에서는

닮았으나 같지 않고 같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나

또 다른 우리의 모습

타인

타자

그래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문화권의 대부분에서는 장애인,광인,탕아,부랑자,범죄자,죄수,성적 소수자들을 멸시하고 혐오하고 증오하며 경멸해 왔었다

합당한 이유가 있든 없든

우선은 경계를 하고 그들에게 분리의 장막을 쳐서 접근을 서로 금지시켜야 안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지하철에서 미친 여자를 보면 그 여자가 완력이 있든 없든 그저 미친 행동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 큰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도망가는 것이다

재스퍼 존스가 그들의 상상 속에서 타자로서의 역할을 공고히 수행할 때 재스퍼 존스는 실체와는 상관없는 괴물로 악으로 자리매김된다

그리고 재스퍼 존스를 유이(有二)하게 사랑하고 이해했던 두 사람 중 하나인 그의 연인인 소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재스퍼 존스는 충격에 망연자실하지만 화자에게 찾아와 시체를 유기하고 처리하는 대책을 의논한다

진범은 어디에?

진범이 누군지는 뒤로 가면 갈수록 알게 되어 있으나 이 소설이 서스펜스 소설로 그리 명확한 특징이나 기발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진부한 소재에 역시 상투적인 트릭으로 숨막히는 범인 검거나 추리의 긴박감마저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추리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추리 소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방인과 타인이라는 낯선 타자를 대하는 인간들의 심리 속에 일그러진 모순을 그려 내려 했다는 점에서 평가하고 싶다

그것이 그리 성공적으로 잘 수행되었다고는 나의 박한 기준으로는 좋은 점수를 줄 순 없지만

이 소설의 살인범은 그런 타인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었다

타인과 우리 , 타자와 이웃으로 가르는 편가르기와 그 경계가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겐 자신들과

즉 우리와 타자의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닐까

부랑아이며 범죄자라는 재스퍼 존스가 살인범이 아니고 우리 이웃 속에 살인범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속에 타인이 들어 있으며 우리와 타자는 결코 둘이 아닌 하나이며 우리 속에 타인인 타자가 숨어 있는 것이고 드러나 있지 않을 뿐이지 우리와 타자는 똑같이 악하고 똑같이 선할 수 있다는 것

마치 재스퍼 존스가 그토록 싫어하고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무서워 하는 미친 할아버지가 사실은 선한 사람이며 또한 재스퍼 존스의 어머니였던 원주민여자와 재스퍼 존스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