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국가의 특징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법치국가라는 것일텐데 이 법률에 의거한 통치의 채택을 예외없이 전 세계의 어느 나라나 다  취하고 있다

사실 원시 사회라고 하더라도 법이 없는 나라는 존재한 적이 없다

고조선의 8조법을 위시해서 로마법을 보더라도 인간이 사는 곳의 기본 원리는 법에 의한 질서 확립과 행정의 시행이었다

그러나 그런 법의 물적 현상에 주목해 이 법에 의한 통치를 사상으로 삼은 사상의 유파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있었다

바로 법가라는 사상학파였다

이 법가의 대표적 사상가는 상앙이었다 진나라에 임용되어 진나라의 통일의 초석을 닦았지만 거열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지금 말하려고 하는 한비자가 있다

한비자는 공정한 법치에 의해 정치의 공평무사한 도가 이루어지길 원했던 학자이자 정치사상가였다

그 당시 중국의 상황은 춘추전국시대로 열국이 난립하고 서로 암투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잡아 먹는 약육강식의 난세였다

이런 어지러운 시대를 개탄하며 공자와 맹자 같은 인의의 중대함을 부르짖으며 왕도 정치의 아름다운 이상을 꿈꾸었던 사람도 있었으나 군주들은 그런 공수표와도 같은 이상에 눈을 돌리지 않고 현실의 세력 확장과 유지에만 힘을 기울였다

그 때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분열된 쇠퇴기였으나 사상적으로는 제자백가의 백화쟁명으로 일찌기 어느 시대에도 이룩된 적이 없는 사상의 황금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그런 난만한 사상적 개화를 맞이하여 눈부시게 제창된 여러 사상들 중에 한비자의 사상적 저작인 한비자도 당당히 그 이름을 내민다

한비자는 정치의 여러 법리를 설파하는 그래서 정치로 부국강병을 꾀하여 제후국으로서의 자존과 나아가 통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번영의 비결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의 사상의 예리함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공자의 왕도 정치가 다 헛것으로 들릴 정도이다

한비자가 이해했던 인간은 공자가 생각했던 아름다운 인간이 아니었다

군자로 대변되는 공자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한비자에게는 그저 공허한 미사여구의 왜곡된 상일 뿐이었다

철저히 욕망과 이기심에 충실한 인간 그래서 벌을 주면 두려워하고 상을 주면 힘써 일하는 일견 평면적이고 비정한 인간관이 한비자의 사상의 원천이었다

말하자면 성선설을 과감히 물리치고 성악설을 깊이 존중하고 철저히 따른 것이었다

그런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권모술수로 신하의 월권과 전횡을 막아 군주의 확고한 그리고 명철한 지도력으로 부국강병의 치세에 이르는 것이 그으 사상이었다

비정한 성악설의 관점에서 보는 제도의 효율성과 그 제도를 운용하는 법령의 정밀함 이런 것들을 추구한 한비자는 기능주의자이고 효율주의자이다

이런 그의 정밀하고 날카로운 사상을 법과 술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의해 펴보려 한 한비자

법은 이런 정치의 체로서 사상의 근간이고 술은 군주가 실용적으로 익히고 있어야 할 실제적인 용으로서 신하를 믿지 않고 합종 연횡의 외교술을 멀리하며 상벌로 국민을 다스려야 한다는 구체적 기술들이다

이런 자신의 주장들을 널리 설파하기 위해 중국 고전에서 여러 군데 발췌한 고사를 촌철살인의 단문으로 탁월한 문학적 성취까지 이루며 기술한 한비자의 저작이 만화 특유의 가독성으로 너무 재미있었다

가히 분량이 적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재미있고 심오한 지혜가 책갈피 갈피마다 가득 고여 있어 역시 고전이란 위대한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으니 무척 유익한 독서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으로 정치라는 게임의 룰과 두뇌의 소리없는 전쟁을 목격하고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키우고 다스리는 것은 정치이고 그 정치는 어디까지나 성악설에 근거한 이해 타산의 지략 대결이라는 해묵었지만 불변의 진리를 깨우칠 수 있어 즐겁고 보람있었다

아마도 만화라는 매체의 직접적인 접근성이 큰 힘을 했을터다

한비자는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려고 간 진나라에서 결국 이사의 모함을 받아 옥중에서 자결하고 만다

자살이라기보다는 압력에 의한 타살이다

그가 뜻을 못 펴고 죽은지 수 천년이 되었지만 그가 남긴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빛나는 발견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귀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한비자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알력인 정치와 그 정치가 만들어내는 복잡미묘한 통치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