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이 이름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별로 시간을 끌 것도 없이 나름의 결론이 튀어 나온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라는 간명하고도 부끄러운

내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아는 것이라고는 현대 페미니즘의 기수로서 여성의 자기만의 방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한 의식있는 작가이고 동성애의 전력이 있으며 올란도라는 소설은 남성이 되었다가 여성이 되었다가 하는 주인공이 나온다는 것 그저 이 정도이다

그외에도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 에세이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읽고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점이 내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들이댈 수 있는 정도의 전부이다

각설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초면의 인상을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선지자적인 첨단을 걸었던 한 여성작가의 명철함이었다

세기말 그리고 신세기초의 190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싶다면 이 책만큼 리얼한 묘사를 하고 있는 소설이 없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영국의 식민지의 광대한 경영과 제국주의를 알고 싶다면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읽어야겠지만 ( 이 책 출항에는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는 잘 언급되지 않는다)

낭만주의의 세기가 끝나고 치열한 현실세계의 긴장과 갈등이 첨예하게 대두하는 산업혁명시대 그 뒤끓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눈으로 보기에는 여성이 살아가기에는 아직 새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폐습인 남자들의 폭력적인 여성 비하와 억압과 여성이 살기엔 독립적인 자족을 허락하지 않는 부당한 체제...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자신의 의식이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미명의 어둠 속에 있었다

그런 것을 반영하듯 울프의 자전적인 모습이 투영된 레이첼은 결국 죽음이라는 파국을 맞는다

아직 여성의 완전한 해방이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어쩌면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체념과 불안이 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버지니아 울프가 퇴고를 거듭한 이 소설에는 짙게 배어 있다

지금 여성의 해방이 이루어진 나라는 일부 선진국에 국한된다 그나마 그 나라들도 아직까지 잔존한 불평등에 맞서 여성들이 투쟁하고 연대하고 있다

그런 아직 오지 않은 시대적 선행의 순간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이기에 이 책에 감도는 주저하는 망설임의 여운은 여성이 걸어가야 할 길의 불투명한 전도를 예감하는 어둠으로 차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남성의 부당한 차별과 지배 구조에 대항해 여성의 궐기와 연대를 꿈꾸는 여성들의 대모인 울프가 바라보는 문명은 남자들의 폭력적이고 자아중심적이며 일면 유치한 것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에겐 좋은 것이 아니라 남자 자신들에게도 해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곡된 남성상은 남성 자신에게도 비틀린 정체성의 무게와 곡해된 관념으로 붕괴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좋은 것은 남성과 여성이 협력하며 동등한 상호공존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울프가 바라본 20세기 벽두의 남성 지배사회의 견고한 폭압에 맞서 여성의 언어로 문학을 수립하겠다는 울프의 문학적 목표가 처음으로 발표된 이 출항이라는 작품은 그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전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간에 대한 맞이로 수런수런거리는 움직임을 감추고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어쩌면 남성지배의 사회에서 여성의 언어로 문학을 하겠다는 것은 네모에 동그라미를 끼워 맞추는 일일 수도 있다

여성은 과연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가

여기 그러한 신세기의 초에 여성의 몸으로 남성사회의 벽에 부딪쳤던 선구자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을 따라 난 강이 인류애라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멀고 심대한 여정을 우리의 눈으로 목격하며 여성이라는 게급과 정체성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