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흐리지만 선명한 눈동자에서 세상을 향한 저항의 눈빛을 마주할 수 있으며, 다문 입술 사이로 신념을 바탕으로한 곧은 의지가 드러난다. 육체의 쇠퇴에 아랑곳하지 않는 강렬한 영혼의 힘을 한 껏 발산하고 있는 이 인물은 프랑스의 작가 '스테판 에셀'이다.   

       그러니까, <분노하라>를 쓸 당시 그의 나이 93세. 1917년 생이니 거의 한 세기 동안 인류역사의 흐름을 온 몸으로 받아낸 인물이다. 세계대전의 중심에 있었으며,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게 되지만, 극적인 탈출로 전쟁 후에는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다. 93세의 노인이 '분노하라'라고 외칠 수 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목숨까지 담보로 내어놓았던 레지스탕스. 삶 자체가 정의를 향한 저항의 역사인 사람이 어찌 노쇠한다고해서 정신까지 사그라들겠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약 두달전 그는 별세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분노하라!'는 메세지는 책을 통해, 그리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의 전이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고 있다. 

        

" 레지스탕스의 기본 동기는 분노였다. 레지스탕스 운동의 백전노장이며 '자유 프랑스'의 투쟁 동력이었던 우리는 젊은 세대들에게 호소한다. 레지스탕스의 유산과 그 이상들을 부디 되살려달라고, 전파하라고, 그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총대를 넘겨받으라. 분노하라!"고. 정치계, 경제계, 지성계의 책임자들과 사회 구성원 전체는 맡은 바 사명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며, 우리 사회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국제 금융시장의 독재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 15쪽

   *레지스탕스 - 역사적으로 볼 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넓은 뜻으로는 파시즘 정권에 대한 저항을 가리키며, 좁은 뜻으로는 프랑스인민의 독일점령군과 비시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가리킨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분노해야 할 대상이 있는지 돌아본다. 21세기에 무슨 저항이냐고?! 저항해야 할 대상은 북녘 땅의 김일성의 손자 뿐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마저도 우리는 저항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발달된 문명에서 안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타인이 겪는 부조리와 고통은 인식하기 어렵다. 누구를 비판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본성이 그렇다. 

       하지만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분노하라고!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의 편이 되고 그가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그가 말하는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 최상위 부유층과 극빈층 사이에 벌어지는 격차. 인권과 지구의 현재 상태. 주위를 돌아보라. 우리가 저항하고 분노해야 할 사항들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가 말하는 저항은 폭력이나 테러리즘이 아니다. 그가 젊음이들, 그리고 책의 독자들에게 권유하는 것은 비폭력 저항이다. 

       

"사르트르처럼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사르트르 자신도 결국 말년에는 테러리즘의 의미에 대해 물음ㅍ를 찍고, 테러리즘이 곡 있어야만 하는지를 의심했다......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한다" - 34쪽

       출간 7개월 만에 200만부가 팔린 동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짧지만 그가 전하는 메세지는 강렬하다. 강렬하지만 그의 시선은 평화를 향한다. 다른 이를 파괴하는 분노가 아닌 잘못된 구조를 변형시키는 변혁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정치적인 시선에서 머물러 우리가 찾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덮어둘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 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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