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까?
사실 마음만 먹으면 그 무엇이든지 정의 내리고 평가 꼬리표를 나열할 수도 있다. 흔히들 말한다. 행복이라,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데서 찾으면 된다고. 역시 일리 있는 말이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미스 슈나우저 이름이 바로 「행복이」인데 행복이 때문에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행복하다. 행복인 지금 바로 내 옆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행복은 이처럼 개인사적인 이기적인 측면이 있다. 남들은 간혹 납득하기 어려운 그런 측면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날그날 머무름의 행복을, 즉 어디론가 멀리 떠나지 않은 자들의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복감을 공유한다. 그래서 떠남의 행복은, 여행의 행복은 특별하다. 일상의 이탈이다. 더군다나 나침반 하나 들고 행복의 장소를 찾아 헤매는 해외여행이란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 이곳에서 가진 걸 감사하고 자족하며 사는 삶이 현명하다고 한다면 당장 여기를 벗어나 무릉도원이라도 발벗고 찾아나서는 삶은 용기와 낭만이 있다고 하겠다. 행복은 미인이다. 현명하고 용감한 자만이 차지할 수 있다. 여기 용감하고 시니컬한 작가 에릭이 있다. 그 자신을 행복사냥꾼으로 명명하고 국가별 행복도를 나침반 삼아 10개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이런 나라에서 산다면 혹은 죽는다면 과연 어떨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에릭은 점차 자기만의 행복정의를 내린다.

에릭의 이러한 행복연구는 네덜란드 Ruut Veenhoven 교수의 세계행복데이터베이스(World Database of Happiness)를 기본토대로 한다. 자료에 따라, 스위스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네덜란드 같은 행복도가 아주 높은 나라들을 방문하고 아울러 이름조차 생소한 몰도바 같은 점수가 가장 낮은 나라도 빼먹지 않고 찾아간다. 사실 대조와 비교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법, 그리고 경쟁자가 없으면 재미도 없다.
에릭이 들고 다니는 행복지도에는 동서남북 대신에 행복도의 고/저를 한 축으로 하고 물질/정신을 다른 한 축으로 삼는 좌표가 그려져 있다. 난 개인적으로 정신적 부자나라 부탄과 물질적 부자나라 카타르 그리고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쌍으로 결핍된 극빈국가 몰도바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었다.
한편으론 가까운 형제자매 같지만 나름 개성이 뚜렷한 나라들도 있고, 가령 북유럽국가 아이슬란드와 스위스, 아시아국가 태국과 인도가 그러하다, 물과 기름처럼 극과 극인 나라들도 있다, 카타르와 몰도바, 미국과 인도.
이들 10개 나라 모두 조금씩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적인 모습과 중첩되고 비교된다. 또한 나에겐 어떤 나라가 딱 맞을까, 하는 단상에 빠져들게 된다. 굳이 문화적 적합성을 따진다면 어느 나라가 자기와 궁합이 맞을지 사뭇 재미있어진다. 음, 태국이 아닐까 싶다^^

진정한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백 명에게 묻는다. 「너 행복한 삶을 살래, 불행한 삶을 살래?」 그래, 바보천치가 아닌 이상 모두가 행복한 삶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 불행은 질병이고 행복은 건강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를 살짝 바꿔, 「너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아니면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어?」이렇게 묻는다면 글쎄 아무런 주저 없이 「난 행복」하고 선택할 사람이 그다지 많지는 않을 듯싶다. 갑자기 「역시 행복한 돼지보단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낫지 않나」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혹시 행복은 선택이고 의미는 그 선택에 대한 아전인수격의 해석인가? 행복하며 의미있는 삶이란 과연 어떤 양상의 삶일까?

행복은 단순히 「난 불행하지 않아」와 「난 이 정도면 만족해」가 아니라 좀더 적극적인 기쁨과 즐거움을 동반한다. 행복 체험은 절제된 흥興과 적당한 낙樂이 필요치 않은가. 에릭은 「만족기쁨」이란 말로 이를 대신한다. 자기계발산업이 대량생산하고 있는 각종 심리서적들은 행복의 내적인 조건 즉 심인성을 강조한다.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고 또 타고난 성격 나름이라고 말한다. 과거 한땐 사상과 신념을 강조했고 지금은 신앙과 믿음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저자 에릭은 「행복은 우리 내면이 아니라 저 바깥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행복연구서가 개인적이고 심리적이었다면 저자는 관계적이고 외부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물론 행복은 다름아닌 「공간」(집, 고향, 환경, 사회적 네트워크, 나라, 문화 등)에 크게 좌우된다란 뜻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이외에 책 속에 나타난 재치 발랄한 단상도 독서의 감칠맛을 한층 더해 준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가 자살을 하지 못하게 막는 요소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는 서로 다르다…….훌륭한 정부, 의미 있는 직업, 가족간의 강한 유대감, 이 모든 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불행에 지쳐 낙담한 사람의 자살을 막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p.62)
●「사람이 사치를 지나치게 즐기다 못해 아주 지겨울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p.150)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는 상투적이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실제로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p.150)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개인박물관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실재하는 건물에 오로지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물건들만 전시할 수 있다면?」(p.171)
●「그럼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이에요? 당연하죠!」(p.266)
●「우리가 어떤 장소를 변화시키는 걸까, 아니면 그 장소가 먼저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야 하는 걸까?」(p.399)
●「누구에게는 낙원인 곳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p.462)

이 책은 재미와 지식이 50:50으로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읽노라면 내 뇌의 쾌락중추와 사고중추가 동시에 활동한다.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전세계 여행가、심리학자、명상가、저널리스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책」이란 카피에 새삼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덩달아 내 행복체온도 기분좋게 올라갔다. 정말 갓 구워낸 맛난 케이크 같은 책이다. 커피 마시게 물주전자 좀 올려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