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애청하는 TV프로가 있다. '알쓸신잡' 나영석PD의 팬이라 그의 프로그램은 빠지지 않고 애청하는데, 이번 프로도 역시 좋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 중에 한 명이 김영하 작가이다. 책을 좀 읽는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의 이름을 (그렇게 많은 상을 수상 했던) 몰랐다니 조금 부끄럽지만 국내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서 라고 쓸데없는 변명을 해 본다. 아무튼 그래서 고르게 된 책. 그런데 프로그램에서 먼저 그를 접하고 난 후 책을 보니 더 흥미롭다. 평소에 그가 하는 말투가 글에 녹아있다. 당연한 얘기 이겠지만, TV에서 작가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이런 경험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글들이 위트가 있다. 문체가 깔끔하다. 그리고 신랄 하면서 따듯하다. 그의 첫인상에서 느낀 모든 것들이 글과 일치한다. 자신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인가, 왠지 신뢰가 가고 앞으로도 그의 작품들을 즐겨 읽게 될거란 예감이 든다.

 - 오직 두 사람

 나는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니 나쁘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과도하게 친밀한 부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나빠보인다. 과도하게 친한것도 과도하게 서먹서먹 한 것도 좋지 않구나.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 나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통신 없이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둘만 소통하고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이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다는 뜻이고 한 사람이 세계에서 사라졌을 경우 홀로 남게될 거라는 경고이다. 그리고 딸은 홀로 남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존 세계가 막을 내렸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는 희망도 내포한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그런 세계. 우리가 사는 이 곳이 그렇다. 나 또한 지금은 이렇게 한가롭게 독후감이나 쓰고 있지만, 몇 분 후면 아기의 밥을 준비하고 안먹겠다는 아이를 상대로 먹이느라 녹초가 되겠지. 분리된 두 세상이 나로인해 연결되어 있다. 

 - 아이를 찾습니다

 작가는 이 단편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던 시점에 초고를 다시 집어들고 집필 했다고 한다. 아이의 부모가 되어보면 안다. 안 되어봐도 어느정도 심정적 이해는 가겠지만 그것은 정말 일부에 불과하다. 아이를 낳은 후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90도정도 바뀌었는데 '안타깝다'정도의 시각에서 '마음이 아파 죽겠다'로 심화되었다. 살아 돌아온 자식과 유골이 되어 돌아온 자식, 그리고 그들을 품고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 

 오직 실종된 자식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살았는데, 찾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정상 궤도를 되찾을 거라고 확신하며 버텼는데 막상 돌아온 아이와 살아보니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것은 결코 행복으로 가득차지도 않았다. 그저 버텨내야 하는 하루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을 뿐이다. 아이를 찾으면 상실감은 사라져야 하는데 내가 기대했던 미래가 무너져버렸다는 상실감이 다시 그를 채운다. 나는 그럼에도 아이를 되찾은 그의 지금의 삶이 훨씬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모르겠다. 아무리 현실이 지옥같아도 그게 아이를 가진 부모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원점

 찌질한 쫄보 남자의 사랑 이야기 인가. 이야기가 끝난 후 피식 했다. 그런데 뭐 나라면 다를 것 같나? 나도 똑같겠지. 저런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면. 인생의 원점이라 여겼던 그렇게 사랑했던 여자라도 내가 신변의 위협을 받는다면 저런 선택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호기롭게 그녀는 내 인생의 원점이 아니었다고 그 원점은 지금이라고 재설정 할 수 있지 않나. 나쁘게 말하면 간사한 것일 테고 좋게 말하면 적응력이 뛰어난 것이겠지. 진화에 유리한 인간의 형태. 그래도 존경할 수 있는 삶의 형태는 아닌 것 같고...

 - 옥수수와 나

 다른 단편들이 드라마 같다면 이번 편은 영화 같다. 심리 스릴러. 그리고 19금. 자신이 옥수수라고 생각했던 작가의 이야기인데 독자들은 그가 어느정도 병을 극복하고 환상적인 뮤즈를 만나 '와이즈 아이드 셧' 같은 작품을 집필하고 간통을 하다가 마치 매트릭스같이 현실을 직시하는 알약을 먹자 다시 병동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 뒷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위트 있는 표현이 압권이었다. 자신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지만 닭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라니. 그 남자는 나아진 것일까 퇴보한 것일까.

 -슈트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의 슈트에 마음을 빼앗긴 남자. 그것은 상실 일까 취득 일까.

 - 최은지와 박인수

 서로의 자리를 참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사장은 직원을, 직원은 사장을. 사장은 직원들에 의해 사실도 아닌 루머로 조리돌림을 당하고 사장은 사장만이 알고 있는 직원들의 치부를 손에 쥐고서 앞날을 조리한다. 그러한 위치에서 최은지는 여우처럼 사장을 잘 이용했고 아직은 순수한 사장은 박인수가 아니기에 상실감과 좌절감을 맛본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적응의 문제일 뿐인가. 그는 그러한 직원들을 향해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이용하는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저 그런 우리의 이야기.

 - 신의 장난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역학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이 정말로 우리를 상대로 하나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인생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아등바등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위해 성찰하며 있을지도 모르는 신을 향해 기도하는 행위가. 네 명의 남녀는 신의 장난에 놀아나듯 어딘가에 갇힌다. 그리고 번식을 원치 않는 듯한 신에 의해 남성들은 중성화 수술을 당하게 된다. 게임인줄 알고 있었던 4명의 남녀들은 의견을 달리했다가 함께했다가 하며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다. 그렇지만 끝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우리는 마치 신이 된양 강아지를 기르고 고양이를 기르고 햄스터를 기른다. 그들에게 세계의 끝을 정해주고 한계를 설정한다. 원치 않는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원치 않는 임신을 시키고 원치 않는 성대 수술을 시킨다. 단지 본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이것은 장난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래서 안전한 울타리에서 키우는 것이라고. 다 너를 위한 것이라고. 그렇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잔혹한 장난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신과 그에 종속된 이들 간의 간극. 

 나는 누구에게 신이었는가. 누구의 장난에 놀아나는가. 생각해 볼 문제를 많이 던져준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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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작가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깊은 상실감 속에서도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세상에 많을 것이다.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그들이 내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