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단편집을 선호하지 않는다. 몰입할 때 쯤 끊기는 그 느낌이 싫어서.

 그런데 한 편 한 편이 천천히 그리고 깊숙하게 가슴에 스민다. 여러 개의 인상 깊은 영화를 본 것 처럼 각각의 장면이 머릿속에 와서 박힌다. 기가막히게 좋았다.

 이런 책은 각 단편 마다 느낌을 적을 수 밖에 없다.

 - 드라이브 마이 카

 

 아내를 잃었고 운전도 잃었다. 그것을 대체해 주는 여자가 생겼고 동시에 하고 싶지 않던 아내에 대해 말 할 상대가 생겼다. 배우자의 외도를 알고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그 외도 상대와 한동안 배우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녀를 오래 알았지만 그녀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외도 상대와 대화를 나누어 보아도 도저히 알 수 없다. 나는 마치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짝사랑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를 잃고 말았다는 남자의 이야기 같았다. '부부'라는 단어로 묶여 있지만 그저 남자가 여자를 짝사랑 하고 있었다는 느낌. 그 상실감이 좋았다. 여자는 아마도 연기를 하고 살았을 것이다. 아내로서 남편을 사랑한다는 연기. 마치 남편의 직업처럼 그렇게 홀로 연기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기의 의미에 대해 남편은 모른다. 그저 다른 한 여자가 운전하는 차에 앉아 그 의미를 곱씹을 뿐.

- 예스터데이

 책 표지의 그림은 이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구나.

 찰랑이는 물 위에 떠 있는 얼음 달. 그녀가 종종 꾸던 꿈에 나오던.

 내가 좋아하는 대만 청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성장하는 동안 가장 잔인한 것은 여학생은 남학생 보다 성숙하며, 그 성숙함을 견뎌낼 남학생은 없다." 

 이 대사가 떠올랐다. 날이 갈수록 가속도를 붙이며 성장해가는 소녀와 하나의 동경으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조금은 덜 성숙한 소년. 그리고 그 속도차를 이기지 못하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그리고 그들의 마음처럼 그들의 나이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고 차갑고 외로운 사랑.

 바다 위의 얼음 달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 독립기관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값비싸고 가벼우 라켓. 그리고 그것처럼 인생을 소모한 남자의 이야기.

- 기노

 텅 빈 채 살아가는 것은 죄악이자 삶에대한 모독이다.

- 사랑하는 잠자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본 듯 하다. 그리고 단편을 다 읽었을 때 마지막 장면에서 나만 혼자 느낄지 모를 반전미를 느꼈다. 아! 그렇구나. 잠자는 유태인이구나 (아닌가...) 아무튼 가족 모두가 게슈타포에 의해 잡혀갔을지 모르고 그래서 집이 텅 비었을지 모르고 잠자는 잡아가기에도 너무 약해 침대뿐인 외딴 방에 남겨졌을지 모르고 그리고 홀로 우두둑 소리를 내며 깨어났을지 모른다. 마치 지금 태어난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인데 곱추인 그녀에 대한 성적 욕망은 본능처럼 살아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감각이 낯설고 백지처럼 하얀 뇌를 가져도 결국은 사랑인 것인가.  

- 여자 없는 남자들

 그저 내가 느끼는대로 끄적여 보자면 남자는 인생에 단 하나뿐인 여자를 잃으면 (죽음이든 이별이든) '여자 없는 남자' 가 된다. 수 많은 여자와 한 침대에 눕고 수 많은 여자와 밥을 먹어도 그들에게 여자는 없다. 남자가 여자에게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한 여자에게 쏟아부었고 그것을 결국 잃게 되었다면 그에게 두 번 다시 여자는 없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은 남는다. 그녀가 좋아했던 음악, 그녀의 습관, 그녀의 체취, 그리고 그녀의 남자 까지도. 여자 없는 남자들은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마음에는 외로움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