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각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고 9시59분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을 다 읽기까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왜일까? 이해하기 쉬운 문체?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조용한 환경이 가져다 준 고도의 집중력?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소설이 아니라 하나의 일기였기 때문이다. 내가 썼기 때문에, 훤히 내용을 꿰뚫고 있어서 읽는 행위가 전혀 수고스럽지 않은 일기를 읽은 느낌이다.
공감했고 억울했고 서글펐다.
왜 항상 남자학생이 1번을 차지하는지, 왜 배려를 가장한 차별을 당하며 참아야 했는지, 왜 온갖 성적인 폭력에 노출되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야 했는지, 왜 함께하자고 한 결혼에 온갖 책임은 내게만 지우는지.
얼마 전 아이를 '봐주겠다' 라고 표현한 남편에게 한바탕 쏘아부쳤다. 내가 동정녀 마리아냐. 이 애는 네 애 아니냐. 네 애를 네가 봐준다는게 말이 되냐. 본인도 반성했는지 그 이후 그런 표현은 일절 쓰지 않았다.
이제껏 살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이 고단하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억울했던 적은 없었다. 차별과 무시는 친구들과 얘깃거리로 소화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게는 그런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나를 "돕는다" 말하고 사회는 내가 일을 "쉬고 있다"'고 말하는데 나는 힘들어 죽겠다. 고되고 우울하고 망망대해에 지표 없이 떠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다. 그저 혼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고 한 손에 책을 쥐고 몇 시간이고 있고 싶을 뿐이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울게 만든다.
아기가 밤에 잠을 안자면 나는 화가 난다. 아기가 깨어 있을수록 혼자만의 시간은 줄어든다. 아기가 나의 자유를 갉아먹는 느낌을 받으며 눈물이 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 내가 나약한건가. 김지영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넌 수 많은 김지영 중 한 명일 뿐이고 모든 김지영은 힘들다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뿌리깊은 여성혐오가 잠식하고 있는 이 사회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잠들기 전. 나는 내일이 오는게 두렵다. 오늘과 변함없이 힘들고 변함없이 우울한 하루가 펼쳐질게 뻔해서. 아기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것은 한 인간의 내면의 문제이고 자아성찰의 문제이다. 다른 건 없다. 이것을 세상이 알아주면 좋겠다.
지난 날, 지옥철에 시달리면서도 모닝커피 마실 생각에 참을만 했고, 퇴근 후 약속을 생각하면 견딜만 했으며 나는 오롯이 그 생각들을 혼자 있는 가운데 했다. 그 시간을 그리워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쓰다보니 이것은 독후감이 아니라 또다른 김지영의 넋두리가 되었다.
아무튼...오늘도 수고했다. 83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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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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