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항상 책을 완독한 후에는 하나의 장면이 사진처럼 마음에 남는다.

그것이 영상이 될 때도 있고 사진이 될 때도 있는데 이번에는 영상이었다.

홀로 기차를 타고 창가에 앉아서 천천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영상.

내가 있는 곳 주변에 사람은 없고, 밖에 보이는 풍경은 겨울이며 회색빛이고 황량하다.

마치 흑백영화 같은 느낌.

이 책이 그러한 것 같다. 마치 황폐한 도시 또는 숲을 기차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듯 주인공의 눈을 따라 천천히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을 관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기승전결이 없이 평이해서 가끔 졸기도 하고 가끔 창 밖 풍경을 놓치기도 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기'는 정말 '페드로'가 맞을까? 그리고 그가 기억한다고 '믿는'것들은 정말 그의 기억이 맞을까?

'나'라는 존재는 늘 '타자' 에 의해 정의되곤 한다. 그래서 '기'는 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과거가 그러했으리라고 추측한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존재의 여부조차 모르는 자신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고단하고 슬펐다. 아무리 남의 이야기를 들어봤자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설령 확신한다고 해도 그것이 잃어버린 그 남자의 전부는 될 수 없기에.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내게 그려지는 이미지는 이렇다.

까만 밤에 달빛도 없는 거리에 상점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상점들에서 촛불인지 전등인지 노란 불빛이 창문을 통해 새어나오고 나는 그것을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다. 나는 춥고 외롭다. 그리고 '기'처럼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런데 그 상점들은 하나 하나 나와 관계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나의 기억들. 그래서 차례 차례 상점들을 들르다 보면 하나 하나 나와 관계된 것들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유년시절이나 지나간 추억을 떠올릴 때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내게 있어 하나의 추억은 하나의 상점이다.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상점. 그리고 그 상점들이 있는 거리는 어둡고 어둡다. 지금 내가 고독해서일까 아니면 인간은 다 고독하기 때문일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 읽어본 것이 계기였다. 사실 대부분의 어렵고 깊은 문학이 그렇듯 재미는 없었다. 생소한 외국어(인명,지명 등)의 나열이 읽는내내 피로감을 주었고 평이한 흐름이 지루함을 주었다. 그런데 묘한것은 후에 남게된 영상과 사진의 이미지이다. 아... 인간 근원에 대한 고민이라고 했던가.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파트릭 모디아노의 힘인가? 라고 생각해 본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라 작품의 원해설과는 한참 떨어져있을지 몰라도. 이러면 어떠하고 저러면 어떠한가. 문학이란 것은 독자의 개인적 경험과 삶에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내게는 이러했다, 이 말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이 작품을 골랐는데, 또 다른 작품에 선뜻 손이 갈 것 같지는 않다.

아직 내 수준이 이러한 것이겠지, 더 열심히 읽어야지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