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P. 150

...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완벽하게 정의 내려지는 정답이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어떤이에게 '고도'는 희망일수도 죽음일수도 신일수도 자유일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고도는 희망이었다. 극을 읽는 초반에는 그것이 죽음으로 다가왔지만 후반에는 그것이 희망으로 다가왔다. 베케트의 허무주의 속에서 희망을 기다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극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허무주의'는 기다려도 결코 오지 않는 고도로 대변된다.

그것이 희망이건 자유건 뭐건간에 기다려도 절대 오지 않는 그것을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을 '시간 때우기'로 낭비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것이 인생인 사람들. 사람의 삶이 그들보다 더 허무할 수가 있을까? 그들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정의로운 일도 하고 자살시도에 대한 고찰도 한다. 신발을 벗었다가 다시 신기도 하고 주머니 속 순무를 꺼내어 먹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삼아 끌고 다니며 온갖 것들, 심지어 생각하는 것 까지 명령하는 모습은 현대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있다. 가시적인 채찍과 목줄만 없을 뿐이지 우리는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생각을 착취당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배부르게 취한다. 포조와 럭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극은 놀랍도록 현대스럽다.

당하는 럭키의 모습과 취하는 포조의 모습에 분개했고 기억하는 블라디미르의 모습에 동감했고 기억하지 못하는 에스트라공의 모습을 동정했다. 극을 흐르는 부조리와 그것을 읽는 내가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부조리가 맞물리면서 뭔가 굉장히 쓰렸다. 세상은 베케트가 극을 썼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더 악화되기만 했구나 하는 생각에.

그럼에도 나는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기다리는 그 시간을 허무하게 때우고 말 것인가 행복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며 살 것인가.

정답은 알고있지만 자신은 없다...라는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