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아들기 전, 나는 이 책에 대해 요즘 나오는 시사 경제에 관한 요약본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더랬다. ‘뻔지르’, 그러니까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라는 제목은 재기발랄했지만, 그래도 그런 인상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책들에 속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목차를 훑으면서 내 의구심은 이내 달아나 버렸다. “이자는 당연한 것일까?”라는 첫 에피소드부터 내 궁금증을 자극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나 ‘‘브라에스의 역설’ 같은 생소한 용어들도 내 지적 호기심을 동하게 만들었고, 서둘러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들을 끄집어내 우리에게 질문한다. 저자는 이자를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금융의 논리를 소개하며, 우리가 쓰는 상품이나 음식의 가격에 이자가 어떻게 포함돼 있는지를 알려준다. 나는 그런 저자의 설명을 들으며, 오히려 이자의 존재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면이 없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저자는 또 미국, 영국,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는 최다득표제가 어떤 한계를 지녔는지를 밝힌다. 평소 정치제도에 관해 관심이 없던 나 같은 사람도 한국의 상황에서 정당득표율을 통한 비례대표 비중을 왜 늘려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생각해 볼 문제를 자연스럽게 던져준다. 이를 테면 저자는 삼성과 LG 사이에 벌어졌던 진흙탕 싸움의 역사를 들려준다. 작년 보도되어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LG전자 사장의 삼성 세탁기 파손 사건을 포함해 이병철 회장과 구인회 회장이 골프장에서 다툰 뒤 시작한 지리멸렬한 싸움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저자는 삼성과 LG가 그 와중에도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담합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두 기업 간 싸움의 진상과 마주하게 한다.

 

저자의 시각은 온당하며 지지할 만하다. 저자는 이미 외국에서 제품 대다수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은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렇기에 “기업의 이익 = 국가의 이익”이라는 공식이 얼마나 과장되고 부풀려진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픽업아티스트라는 용어에 대해 저자는 반발한다. 저자는 픽업아티스트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직업으로 볼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람의 마음이 아닌 하룻밤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는 이들을 ‘아티스트’라는 말로 인정해주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몇 번 제기는 되었으나, 해결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 그러니까 종교인 과세라든지 평창동계올림픽 문제에도 저자는 눈길을 준다.

 

많은 이들이 불편해 할 만한 사실들을 여과 없이 지적해주는 저자의 균형 감각이 좋다. 무엇보다 약자에게 보내는 저자의 사려 깊은 시선이 마음에 든다. 저자가 투명한 절차를 위해 만들어진 입양특례법이 그 취지에서 벗어나 버려지는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나, 동물보호법의 처벌수위가 약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그런 시선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저자는 특히 이슬람권에서 학대당하는 여성들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이슬람권과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명예살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의한 인신매매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것이었다. 나이지리아에는 아기 공장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이곳에 납치된 소녀들이 감금되어 끊임없이 강간당하고 기계적으로 임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비인간적이고 추악한 일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이 책을 넘기다 보면 우리가 한 번쯤 접해봤거나 이런저런 일로 놓쳤던 정보들, 그리고 이에 대한 여러 시각들과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와 부대끼느라 진이 빠져버린 사람들, 쏟아지는 정보를 차곡차곡 정리해 자기 것으로 챙길 여유가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뻔뻔한 지성들의 르네상스]은 그런 이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이 책을 몇 꼭지만 읽어본다면, 특별히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는데도 제법 푸짐한 상 잘 받아먹었다는 포만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은 나부터가 경험한 일이다.

뻔뻔한지성들의르네상스, 보헤미안, 베프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