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또는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줄거리부터 간단히 보자(지금껏 리뷰를 쓰면서 책 소개 줄거리를 그대로 붙인 건 처음이다. 나름 간추리긴 했는데, 출판사 줄거리가 워낙 잘 간추려져 있어, 그리고 지금 쓰려는 리뷰의 전반적인 내용이 바로 ‘출판사에서 간추린 이 정도 줄거리 내용’ 뒤의 이야기와 관련 있어 그대로 옮긴다.)

[스웨덴 뇌과학자 에리크는 생각의 힘만으로 인터넷서핑을 할 수 있는 마인드서프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한편 이슬람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키기 위해 ‘모나’라 불리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컴퓨터바이러스를 개발하여 서서히 시스템을 침투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마인드서프 테스트에 참여했던 에리크의 아내 한나가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에리크는 이스라엘 금융회사 TBI가 컴퓨터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후, 마인드서프로 TBI 웹사이트에 접속했던 한나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고 확신한다. 에리크가 아내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안티바이러스를 찾는 것뿐이다.

헤즈볼라 조직에 속한 안티바이러스 개발자를 찾기 위해 에리크는 이스라엘로 떠나면서 예기치 못한 여행이 시작된다. 세계 최고의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의해 에리크는 테러범을 잡기 위한 스파이 신분이 되면서 이스라엘과 목적을 달리하는 미국 FBI에게 쫓기는 처지가 된다. 에리크는 스톡홀름, 니스, 예루살렘, 가자 지구를 거쳐 안티바이러스 개발자를 추적하던 도중, 해킹으로 헤즈볼라 조직과 접선하는 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 책뿐만 아니라 수많은 책 소개의 줄거리는 내용의 전부를 담고 있지 않다. 독자의 호기심을 끌 정도만 드러낼 뿐이다. 이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로 본다면 많이 드러내야 ‘승’까지다. 절정을 포함하는 ‘전’까지 드러낸다면 다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네 부분에서 ‘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뜻하기도 한다. 우린/독자는 이 ‘전’/절정을 맛보고 느끼기 위해 작가가 만들어놓은 ‘기’와 ‘승’을 달린다. 앞의 두 부분이 조금 미진하다 하더라도 ‘전’에서 빵 터뜨려주면 어느 정도 용서가 되기도 한다.

자, 이 작품 ‘모나’의 기-승-전-결은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간단하다. 위 줄거리가 딱 ‘승’까지의 줄거리다. 그리고 ‘전’은? 주인공 에리크가 헤즈볼라 조직과 접선에 성공해 안티바이러스를 얻는 것. 그럼 당연히 ‘결’은 그걸 통해 아내 한나의 병을 치료하는 얘기겠다. 그런데 내가 의문시하고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작품의 목적이 무엇인가?’

이 말은 곧 ‘주인공의 목적은 무엇인가’와 닿아있는데, 그 목적은 언급했듯 아내 한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안티바이러스를 얻는 거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디일까? 헤즈볼라 조직과 접선하기까지의 과정일까, 아니면 접선한 후 그들에게서 안티바이러스의 유무확인과 얻어내는 과정이 중요할까? 당연히 아내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들에게서 얻어내는 부분이 가장 중요할 거다. 그리고 이 부분이 ‘전’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본문 551페이지 분량 중 무려 434페이지(페이지의 차이가 있겠으나 내용상 거의 이 정도!)에 걸쳐 ‘기-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주인공이 헤즈볼라 조직과 접선하기 전까지의 과정이 이 정도 분량이라는 거다. 그럼 나머지 117페이지 중 ‘결’은? 477페이지부터 시작이 된다고 볼 수 있다(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헤즈볼라 조직에 잡혀 있는 상태에서 구출되기까지로 본다면.) 즉 ‘기-승’에 434페이지, ‘전’에 43페이지, ‘결’에 74페이지, 그래서 총 551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는 얘기다.

소설을 보면서 페이지 수에 집착하기는 참 오랜 만인데 이유인 즉, 딱 헤즈볼라 조직과 접선하기 전까지(‘승’)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남은 페이지를 확인했다. 작품의 내용상, 줄거리상 ‘전’은 지금부터 시작이 돼야하는데 남은 페이지는 별로 없는 거다. 게다가 ‘승’을 전개하면서 만들어놓은 여러 곁가지 상황들이 있지 않은가. 그걸 큰 것만 풀어낸다고 하더라도 남은 분량이 턱없이 적어 보였다. 우려하면서 보았고 ‘전과 결’은 앞의 두 부분, ‘기와 승’에서 별로 중요치 않은 부분까지 묘사에 치중한 것과는 달리 별다른 큰 상황/사건 없이 흘러갔다.

그러니까, 목적인 헤즈볼라 조직에게서 안티바이러스를 얻는 과정/상황/사건이 매우 민숭민숭하게 전개된다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전’의 부분인데도 말이다.

실력 있는 뇌과학자이지만 주인공은 이런 상황을 처음 겪는 일반인이다. 그렇기에 헤즈볼라 조직과 접촉하고 그들에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답하겠다.

실제 일반인이 이런 테러범들을 자발적으로 만날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될까? 소설이기에 가능한 거다. 그러니 소설 속 일반인이 테러범들을 만나기 전까지 숱한 우여곡절과 두려움을 안고 접선을 시도할 수 있었다. 접촉 전까지 두렵지만 아내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곳곳을 돌아다니던 주인공은 헤즈볼라와 접촉한 후 매우 얌전해진다. 그것이 성격이든 두려움이든 안티바이러스의 유무확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가 취한 액션은 없다. 있다면 조직 내 ‘모나’의 개발자와 정신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 이 부분을 안티바이러스를 얻기 위한 주인공의 방법/수단이라고 해도 주인공이 치열하게 움직였던 그 전의 상황, 행동과 비교해 본다면 매우 미약하다.

자, 아내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돌아다녀 결국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조직까지 들어갔다. 그렇다면 더욱 열심히 구하기 위해 액션을 취해야하지 않는가? 엎드려 빌건, 없는 힘이라도 짜내 팔을 비틀건, 개발자를 꼬드겨 함께 도망을 치자고 하건 무언가 행동이 있어야 정상적일 텐데 주인공은 그게 없다는 거다. 매우 얌전히 개발자와 정신적 교류에 치중한다. 아무리 뒤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봐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치더라도, 이런 주인공의 행동은 ‘전’/절정 부분에서 납득하기 힘들다. ‘기와 승’에서 풍선에 잔뜩 바람을 집어넣더니 ‘전’에 들어가서는 빵! 터뜨리지 못하고 입구를 열어 푸우, 하고 바람을 빼는 모양새다(실제 이스라엘 특공대에게 구출되는 부분을 보면서 바람 빠진 기분이었다.) 이 과정이 고작 43페이지에 불과하다는 거다.

모든 소설이 ‘전’에서 화려하고 페이지 분량이 많고 액션이 많아야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작품 전개과정이 어떤가에 따라 다르다. ‘전’의 부분이 20페이지가 될 수도 있다. 임팩트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의 임팩트가 매우 약하다. 주동적으로 움직였던 주인공은 잡혀있다는 상황 속에서 매우 수동적이다. 그것이 상황 속 현실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묻는다면 아까 물음과 똑같다. 소설 속 주인공이기에 어떤 액션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해 가능한 액션이어야겠지만, 이 주인공은 그런 액션조차 없이, 전의 상황과는 완전 다르게 매우 수동적이라는 거다. 소설 속 주인공이 말이다.

‘전’의 부분만 놓고 보면 주인공은 ‘모나’의 개발자다. 개발자가 왜 ‘모나’를 만들어 전 세계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트렸는지에 대한 간추린 이야기가 ‘전’의 내용 전부다. 그 간추린 내용을 다시 한 번 주인공에게 얘기하는 것 외에 ‘전’에서의 내용은 없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전’의 내용이 이 정도인 걸 납득할 수 있는가?

‘결’에서 주인공은 독자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반전을 혼자만 모른 채 아내와 만나고 안티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 부분만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주인공은 목적달성에 실패했다는 얘기가 된다. 구출되고 나서도 자신이 안티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대체 헤즈볼라 조직에 가서 주인공은 무얼 했단 말인가? 그 전까지는 독단적으로 좌충우돌 집념을 보이더니, 잡혀있는 상태에서는 얌전히 있다가 테러범에게 총 맞기 전에 구출되고, 게다가 병원에 와서야 안티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주인공이 잡혀 있는 상황 속에서의 얌전한 행동들은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테러범들의 기세에 눌려 얼어 있었나? 그렇지도 않다. 잔인한 테러범은 잠시 일 보러 나가 있었고 개발자와 주인공, 부하 테러범 몇 명만 있었기에 그다지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의 부분이 더 민숭민숭하게 보인 거다.

작가의 다음 출간 예정작품이 ‘시논’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본 사람이라면 ‘시논’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데, 다음 작품을 염두 해 둔 듯 여주인공격인 ‘라헬’과 그녀의 적대자와의 사건 관계를 ‘결’에서 간단히 처리해버렸다. 사실 이 부분 또한 짧게 처리되어 아쉬움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 부분이 다음 작품과 연결된다는 걸 알았으니, 어쨌든 작품 자체로는 에피소드 마무리가 미흡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에피소드는 작품 내에서 큰 부분이기도 하며 분량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FBI와의 관계 또한 아쉬움이 있지만 부분들을 딴지 거는 듯해 넘어간다.

그럼에도 한 가지 더, 책 소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소설에서 컴퓨터바이러스로 인한 세계 강대국의 금융시스템 마비, 주식 폭락사태와 같은 이야기는 상당한 현실감을 선사한다.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인터넷 시스템인 병원, 항공, 유틸리티, 제조, 국방, 금융 등과 같은 중요한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으로 일시에 마비될 경우 우리가 상상하는 재앙, 즉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단 몇 분 안에 도래할 수도 있다. 셀베리는 정교한 뇌과학 이론을 토대로 시스템에 맹목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문명의 취약한 실상을 설득력 있게 전개해 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소개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는 혼란에 빠지지만 약간의 설명과 인물들의 언급 정도만 전 세계의 혼란이 그려질 뿐이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이 강조되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지는 설명/부분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건 곧 사건/사태의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과 닿아있다.

그렇게 재미없나?

‘전과 결’에 대한 혹평을 했지만 ‘기와 승’은 매우 재밌게 흘러간다. 434페이지가 나름 가독성 있게 진행된다는 얘기다. 전체 분량의 4/5가 그러하니 이 정도면 재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위에서도 언급했듯 ‘기와 승’을 달려 ‘전’에서 빵 터지는 맛을 보려고 이야기를 보는 거 아닌가? ‘기와 승’만 보려고 작품을 보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기와 승’에서 그리 중요치 않은 부분들까지 묘사한 게 군더더기처럼 보인다는 거다. 분량이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닐진대 이렇게 ‘전’을 분량에 맞춰야하는 듯 처리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재밌는 ‘기와 승’까지 군더더기가 많은 부분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헤즈볼라 조직과 접촉하기 전까지가 아닐까? 그래서 분량의 4/5를 할애한 거 아닐까?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라고 하겠다.

마커스 세이키의 ‘브릴리언스’를 보면 주인공의 목적은 ‘딸을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기 위해 적대자를 잡는 것’이다. 그리고 적대자를 잡는 데에만(과정) 온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작품 ‘모나’의 주인공 목적은 헤즈볼라와 접촉하는 게 아니라, 안티바이러스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종목적이다. 아내를 구하건 그렇지 못하건 그건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헤즈볼라와 접촉한 이후에서 바람이 빠진다면 근본적인 목적 자체가 틀린 거 아닌가?

정말 헤즈볼라와 접촉하는 게 목적이라면 이야기 전개는 이 부분을 좀 더 부각시켜 ‘전’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한 ‘전’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럼 기존의 ‘전’(조직에 잡혀있는 상황)은 자연스레 ‘결’로 가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 진행은 이렇지 않다. 주인공은 목적의 반만 수행한 꼴이다.

소제목으로 언급한 ‘그렇게 재미없나?’로 돌아가서,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 작품은 나름 재밌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언급한 부분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니 나처럼 이런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나름 재밌게 볼 수 있는 소설이다.

혹평 분량이 많으니 장점 몇 가지를 소개한다면,

1.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은 당연히 다르게 행동한다. 일반인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이해 가능한 행동들이 소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개연성과 핍진성을 나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2. 컴퓨터 바이러스가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소재의 다른 작품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겐 신선한 소재다. 비록 소재 자체로만 끝날 뿐, 그 소재에 대한 좀 더 깊은 사유가 없다는 게 아쉽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해는 된다. 이 작품은 엔터테인먼트 소설이기 때문이다.

3. 혹평한 부분이 다음 작품 ‘시논’을 망설이게 하면서도 기대감을 준다. ‘모나’와 이어지는 연작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기와 승’ 정도의 재미라면 재미없지는 않을 거다.

4.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고 한다. 그만큼 매력적인 이야기, 상황들이 눈에 그려지는 전개과정이라는 거다. 가독성이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