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 관한 책 몇권을 읽으면서 나는 '내리 사랑'이라는 관점의 편견때문에 최루성 작품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내용에 대한 편견은 과감히 무너지고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당연한 사랑의 한 표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에 관한 책을 읽으면 가슴이 뭉클하다. 나도 부모가 되고 아버지가 될텐데 아버지로 자식으로 가지는 삶의 관계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소명이 생긴다.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자식의 눈으로 부모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철든 말과 행동'을 가질 수 있다고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알면서도 느끼면서도 자꾸 당연하다는 최면을 걸어본다. 하지만 그것은 최면을 걸어서 가질 수 있는 그것이 아니라 당연히 가져야하는 불가결하고 불가피한 상황이고 관계인 것이다.  

이쯤 김정현 작가의 <어머니>에 대해 소개를 해볼까 한다. 몇번 개정판이 나왔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소설 <어머니>는 2001년 6월 문이당에서 발행한 것이다. 거의 절판된 소설이라-나중에 개장판이 나왔지만 이 판을 찾기는-오랜 세월의 흔적을 쉽게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다행이고 뿌듯하고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이 소설은 외환위기 이후 시대상을 반영했다. 한 가정은 서서히 무너지고 가족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가족의 해체는 바로 가정의 와해로 이어진다.

흔한 줄거리. 제목을 본 순간 누구든 흔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이로 인해 헤어져 살 수밖에 없는 부모, 불안한 가정에서 비뚤어나가는 자식들, 결국 동생을 고아원에 보낼 수밖에 없는 누나의 선택. 어느 누구든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가정의 해체 과정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 본인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쉽게 판단한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본인에게 닥치는 시련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만약 자신의 가슴에 박힌 날카로운 송곳이라면 가능할까? 생각의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현 작가의 <어머니>는 한낱 시대상을 반영한 최루성 가족드라마가 아니다.  

책 후반부에서 의미심장한 대목이 나온다. 아마 여러가지 의미 중에서 작가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 세상 모든 아빠들은 딸들이 모두 자기 같은 남자를 찾고, 그런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믿고 있죠?

그런데 사실은 아니에요.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한 때만 돼도 다른 친구의 아빠가 훨씬 좋아 보이는걸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런 그 친구의 아빠를 잘 모르기 때문이에요. 아무튼 그러면서도 딸들은 아빠를 가장 
사랑하는 척하죠. 왜냐하면 그래야 아빠가 속아서 더욱 잘해 주거든요......(중략) 그렇지만 이건 진짜인에요, 
난 여태 아빠가 최고인 줄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중략)......앞으로는 
정말 전 아바를 좀 우습게 여기고 또 아주 조금은 미워할 거예요. 아빠를 너무 사랑하기만 한 딸은 결혼한 뒤 
아빠를 미워하게 된대요. 그렇지만 결혼하기 전에 아빠를 미워한 딸은 결혼을 해서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는대요. 더 사랑한대요. 왜냐하면 그건 남편이, 미워했던 아빠보다 별로 잘난 게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래요."   -   304쪽

 

아버지의 고된 삶은 결혼해서 아내라는 반려자가 생기고 자식이 생기고 또 이제 늙어 돌보아야할 노부모가 생기면 더욱 힘들어진다.

하지만 별일 없이 힘든 내색 한번 하지않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고된 삶의 중심에서 본인의 생활을 조정하는 그런 대상들이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율배반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그래서 흔한 사랑의 정의로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인게다.

남자는 결혼하면 더 어리광을 부리고 어린아이가 된다고 한다. 사고를 통해 나오는 말과 행동도 때론 유치해지고 어리게 보이지만 그것은 바로 기댈 수 있는 충분한 안식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자식들에게 엄한 부모도 자식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정도로 헌신한다. 바로 엄한 만큼 자신의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물론 이 시대 어머니들도 자신의 길, 즉 점철된 자식의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 아픔은 한 세대에서 끝나야 한다는 사랑의 방정식을 <어머니>라는 소설을 읽으며 다시 음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