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제상황이 10년 전보다 좋다 좋지 않다 설왕설래하지만 딱히 명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아마도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체감경기는 한 개인에서부터 가정, 기업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이 수반되는 모든 구성체에 영향을 준다.

이 중에서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최소단위이며, 가장 중요한 단위인 가정은 더욱더 민감하다.

집안의 어른, 즉 '가장'이라는 고전적인 의미는 이제 사라지고 있다. 꼭 남자만이 아버지만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하는 시대는 저 멀리 태고적 이야기가 돼 버린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고 홀부모-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정들이 많다. 그래서 꼭 아버지라는 공식은 진부하다.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하고 과도한 연민의 정이 우리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도록 만든다.

'아버지'를 주제로 한 소설은 모성을 이야기한 작품보다 많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등이 굽에 그 어느때보다 초라해 보이는 모습을 대상으로 하나둘씩 선을 보인다.

이채윤 작가의 <아버지>는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속에서 자아를 찾는 아버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실제 주인공을 독자들과 일치시켜 나라면 어떡게 행동했을까라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소설이다.

 

돌연 집을 나간 주인공 이원근.

아들과 딸 두 자녀둔 그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딸은 석달이 지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흔적인 고스란히 남아있는 역사였다. 그 일기장을 통해 딸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왜 아버지가 가출을 했는지 연애시절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냉담하기만 어머니의 반응. 이미 20년 넘게 갖은 고생과 우여곡절을 겪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묘연한 행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하던 일을 묵묵히 한다. 딸의 눈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사기, 아버지 동생의 죽음 등 그의 가정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지나왔던 폭풍속의 삶. 버텨야만 한다는 신념 하나로 이 가정을 그렇게 위태위태하게 이어져왔다.

그런 아버지를 몇달만에 부산 어느 병원에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풀기 힘든 감정의 잔여물이 너무 많이 너무 딱딱하게 쌓여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생의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이 망가져버린 것에 대한 회환이 잘 표현되어 있다.

 

 

신의 노려움때문에 착실하고 승승장구하며 사업을 키웠던 동생이 죽었다고 믿는 주인공 이원근.

바로 돈의 신은 우리의 감정을 마비시키고 이성을 마비시키고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을 앗아간다.

그래서 욕심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보다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물질만능주의에 역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오고 그 돈이 얼마인지에 따라 아내와 자식들에게 능력을 평가받는 이 시대.

그들은 아버지다.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삶이-솔직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 경제를 책임져야하는 삶-무의미해지고 가식적인 자기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연민이다. 구부정한 모습이다. 설자리 없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아마도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기관차와 같다.

앞만보고 달리는 기관차는 자칫 한눈을 팔거나 딴 생각을 하게 되면 무시무시한 탈선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들의 아버지 역시 이런 위태로운 외줄타기라는 현실에서 자신은 승객을 실은 기관차처럼 정해진 목적지만을 위해 달린다.

이 책 <아버지>에서 이채윤 작가는 이런 모습들을 한번 되돌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우리들에게 아니 이 세상의 아버지와 자식들에게 잠시 쉼표를 던져주고 있다.

만족도 위로도 얻지 못하는 결론을 내린 소설속 아버지 이원근은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지금 아버지들에게는 위로를 주고 앞으로 아버지가 될 또 다른 예비 아버지들에게는 바로 삶의 지침을 살며시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