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나 사물을 한번 찾아보자.

현실이라는 굴레에 파묻혀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런 공존의 세계는 한낮 내리는 눈과 비, 그리고 부는 바람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거나 큰 화제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책 속에서 현재의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귀하면서 줄거리가 전개되는 방식을 많이 본다.

보통 그런 작품들은 독자들이나 관객의 흥미를 끌고 가장 동기를 유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듯 싶아.

이처럼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는 방법으로 '과거회귀'가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같은 시간을 배경으로 설정하는 방법도 있다.

제이아셰르의 작품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바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한 여학생의 의문의 자살로부터 시작된다. 왜 죽었는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지만 정작 죽음의 비밀은 따로 있다. 여학생의 죽음의 비밀을 담은 '카세트 테이프'가 바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의문의 자살로 파장을 일으킨 해나 베이커, 그리고 해나의 리스트에 오른 13명의 사람들.

이쯤에서 대강의 줄거리를 머리속에 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해나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은 가족들도, 친한 친구들도, 학교도, 경찰도 아닌 바로 해나 자신이다. 카세트 테이프 속에는 해나가 죽기전 녹음했던 음성이 흘러나온다. 각각 두면씩 모두 7개의 테이프.

이 소포는 모두 13명에게 배달되고 그 중 테이프의 해나와 함께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클레이 젠슨. 해나의 학교 동료다.

그렇다면 왜 해나는 자살을 했을까? 십대의 고민, 배신감, 체벌, 따돌림 모두 해당될 수 있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감정들이 타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충격이 되고 아픔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상호관계를 맺고 배려하는 감정의 제어판을 가동시킨다.

다음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까 이 학교에 다닌 뒤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나뿐이었어.
첫 키스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설레었지만…돌아온 건 비난뿐이었어.
진심으로 믿었던 두 사람은 등을 돌렸지.
둘 중 한 명이 날 내세워 다른 사람에게 복수하는 바람에 난 배신자로 몰렸고.
내 말을 이해하겠니? 나 혼자만 너무 앞서 나가는 거야?
자, 어서 따라와!
소중한 너희들은 여전히 지키고 있는 프라이버시와 생활의 안전은 누군가 통째로 빼앗아 갔어.

게다가 그 불안한 상황을 이용하여 뒤틀린 호기심이나 충족하는 사람만 있고.(158쪽) 

책속 줄거리로 다시 들어오면 그렇다. 해나은 죽기 직전까지 녹음기로 자신의 음성을 담는다. 어떤 음성?

바로 왜 자신이 자살이라는 마지막 권리를 포기해야만 했고 그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감정을 녹음기의 음성으로 함께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아마도 경찰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했던 부분이 듯 싶다.

해나의 직접적인 자살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도 있고 간접적인 이유가 된 사람도 있다. 바로 저스틴 폴리라는 학생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호의적이고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심지어 감정까지 나누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그 중 한명이 바로 클레인 것이다.  

대상의 줄거리는 이렇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는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속에서 몇가지 짚고 넘어갈 것들이 있다. 바로 '진실'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들을 하루에 수십번도 더 한다. 그것들은 속칭 '상념'이라고 부르며, 상념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머리속 상상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이런 상념들은 진실이 아니며 현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상념의 덫에 걸리면 우리는 그런 가공의 생각이 현실이고 진실이라고 믿는다. 환각이나 환청속에서 현실과 가공의 세계를 혼돈한다. 아마 주인공 해나 역시 상념이 진실로 옮겨지며 푹 빠져버린 어린양이다.  

우리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념들. 진심이 아니고, 진짜로 그렇게
느끼진 않아도, 머릿속에 꽉 차 있는 생각들. 집중하다보니 푹 빠져서.(192쪽) 

다음으로 '규정되는 모호한 개념'이다.

사실 자살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테이프속 설명은 해나의 주관적인 판단이며 감정이다.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중요하고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과거의 모호한 개념은 현재 해나의 음성으로 구체화되고 당시 자살에 대한 모호한 개념들이 현재에 뚜렷한 진실로 규정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점에서 뛰어난 구성력을 가졌으며,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감히 평할 수 있다.

하나의 사물, 한마디의 말, 한번의 행동으로도 세상 온갖 것을 표현하고 온갖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사춘기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이다.

책속에서 해나가 시를 좋아한다는 구절 역시 앞에서 말한 것을 대변한다.   

난 그래서 시가 좋아. 애매모호할수록 더 좋아. 시인의 의도를 딱 꼬집지 못하는 부분이 좋아.

얼핏 짐작만할 뿐, 확신할 수 없지. 백퍼센트란 확신이란 불가능하니까.

심혈을 기울여 골라놓은 하나의 낱말에 겹겹이 쌓인 수백만 가지의 다른 의미들.

뭔가 다른 뜻이 있진 않을까? 더크고 비밀스런 메타포가 숨어 있나?(193쪽) 

이 책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 과거회귀를 통한 진실의 발견, 규정되는 모호한 개념 등을 조리있고 맛깔나게 구성한 흥미로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