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책속에서 발견하는 조선...법의 정의

국가최고법인  헌법의 역사는 그 시대 정치권력의 역사다.저자는 법과 정치를 분리하지 않고 있으며, 최소한의 영향력을 가진다고 보고 있다. 정치과 법의 우위를 따질 수는 없지만 법은 정치권력에서 나오며, 시대 정치에 따라 법의 내용이 바뀔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법의 기본이념은 바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성군이든 폭군이든 말이다. 스스로 유리한 해석을 내릴 수 있지만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정의는 변하지 않느다.

백성들이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법전을 번역하여 배포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백성들은 법조문을 알아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들 인식의 한 면모이다. 결국 사대부들이 주장하는 법치주의는 위에서부터 백성을 규율하고 통치하는 측면에서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적인 법치주의였다.(118쪽)

특히 조선시대는 신분이 뚜렷히 구별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소위 '사대부'라는 정치와 사회우위계급에 의해 법의 해석과 집행이 달라질 수 있는 위험성을 짚어냈다. 법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적인 조항이지만 나아가 인간의 선과 악의 관계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세종의 치적을 운운하면서 그 이면에 뇌물사건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저자 또한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발전적인 방향을 위한 밑거름을 삼아야한다는 실리주의를 택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어느쪽에나 장단점이 있다.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이 선택하고 선택에 따라 실천한 다음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문제이다. 인간 세상의 법은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법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거치고 역사의 평가를 받으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법이나 입법적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152쪽) 

01 뇌물사건의 나라 조선

'정경유착'과 '권력형 비리'로 얼룩진 우리의 역사가 있었다. 아니 그런 역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며, 사라지지 않는 힘의 논리다. 근대화의 혼란기속에서는 비리사건이 더욱 판을 쳤으며 이후 민주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그 양상과 수법이 더욱 진화됐다. 지금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는 비리가 자행되고 있다. 각종 '공화국' 타이틀을 걸고 자행되는 정치와 경제의 유착, 그리고 권력이 개입되는 비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배경으로 조선시대 역시 뇌물사건이 많았다고 한다. 이 시대는 노비제도라는 계급과 계층의 구분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뇌물'에 취약한 사회와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형의 방탕한 생활로 보위에 오르고 왕이 된 세종. 그는 한글창제를 비롯해 조선문명의 증흥기를 이뤘던 성군이었다.

그러나 성군의 주변에서 권력형 뇌물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이 책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는 조말생이라는 관리의 뇌물수수사건을 재조명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왕과 관련된 비리사건의 처리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조선왕조 500년 중 한 사건이지만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권력을 앞세워 사건을 무마하기 보다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여준 개방형 뇌물수수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찾을 수 있다.

02 세종의 사건처리를 보면...

조말생은 고려 공민왕때부터 조선건국을 이뤘던 이성계, 즉 태조,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태종 이방원, 그리고 세종까지 주요요직을 두루 꿰차고 앉은 인물이다. 이런 조말생이 어느 관료로부터 노비 수십명을 대가성으로 받은 뇌물사건의 주역이다. 

사헌부에서 조말생의 노비수수사건을 조사해 전모를 밝히고 결국 조말생은 파직되고 귀향을 가는 형벌을 받지만 세종은 다시 복권시키고 함길부사에 임명, 4군6진 개척에 참여시키는 등 그를 완벽히 복권 부활시킨다. 이쯤에서 다른 관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종의 조말생 등용은 엄격한 법 적용을 주장하는 대간의 입장에서 특정 사건에 대하여 예외를 둠으로써 법치주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하고도 남을 일이지만 세종이 추구하는 실리주의가 당시 시대적 상황속에서 국방정책과 인사정책에 시의 적절하게 반영된 것 또한 사실이다.(151쪽)

현재 대한민국에는 검경수사, 청문회, 탄핵 등 단죄를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법률상 보장돼 있다. 이와같이 조선시대 역시 관료대신들이 거의 3년 넘게 조말생의 탄핵을 주창하는 상소가 끊이질 않았지만 세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는다.

이는 비리를 봐주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가지는 왕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논리적으로 관료대신들의 상소를 조목조목 맞받아쳐 그들의 주장을 굽히게 했다. 
이 책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속에서 담론은 바로 뇌물사건에 대한 세종의 처리방향이다. 그는 온갖 탄핵상소에도 굴하지 않고 조말생을 등용했으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왕은 법의 위에 있다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봐야하는가? 서정민 저자는 법조계에 있는 자신의 상황을 감안해 장단점을 논하며 유한 분위기를 이끈다. 세종에 대한 예우차원일 수 있으며, 조선시대 권력형 비리사건의 처리과정으로 통해 이 시대의 법치주의의 정의실현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저자 서정민

현재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서 검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석사)을 마친 뒤,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우리 형사법의 역사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서 과거의 법제도와 사례를 통해 현재를 되새겨 보는 데 주안점을 두고 한국법제사를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