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대한 색다른 해석

 "놀아라, 인간은 오로지 놀 때에만 완전한 인간이다"

삶을 숭고하게 생각하며 하루 하루 진지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때론 즉흥적이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답은 없다.

독일어로 'Spiel'(슈필)은 영어로 'Play'라는 의미로 놀이 이외에 게임, 도박 등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놀아라! 'Spielen Sie Bitte!' 

크리스토퍼 하인의 <나폴레옹 놀이>는 변호사의 살인사건과 관련 자신의 행위를 놀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한 인간의 논리적이며 처절하기까지 한 주장이 다른 변호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주인공은 범죄자들의 놀이에 대해 이해를 구하며 그들의 놀이, 즉 살인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 항변한다.

독일 특유의 부조리극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다룰 필요가 있다.  

이 범죄자의 악행은 다양하고 굴곡이 많을 뿐 아니라 거기엔 수많은 위험과 우연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성공은 완벽에 가깝게 돌아가는 두뇌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범죄자들에게 이 놀이의 즐거움은 거기서 얻는 이익만큼이나 큽니다.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놀이입니다. 아니, 오로지 몰이만이 우리의 생명을 지탱시켜줍니다. 살기 위해서 놀이를 즐겨야 했던 내 권리를 변호해주십시오.(45쪽)

'놀이'를 빚댄 정신의 불꽃놀이 

주인공 변호사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이 소설속에서 주인공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살인을 저지르기까지의 삶이 이야기의 대분을 차지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라인니쉬 뵈를레 섬유공장, 슈페틴 사탕공장, 튀링겐 우표 판매소, 중등 기숙사 학교 입학, 그리고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 그 순간 순간의 일들이 모두 놀이의 과정이며,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배경을 이룬다.

책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대사나 대사를 표현하는 특수기호가 없다. 자칫 지루하고 책장 넘기는 속도를 늦춰 읽기 힘들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야기 자체에 무게를 두고 뭔가 독특함으로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음울하면서도 무거움을 선사하는 저자의 구성모델. 

이 소설은 한 변호사의 살인을 통해 독일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으며, 그들 특유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살인=놀이'라는 공식을 해명하기 보다 노동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예나 지금이나 내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의 직업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 놀이꾼의 밥벌이(엄숙한 의미의 밥벌이를 말합니다)엔 이보다 더 좋은 영역이 없다는 것을 당신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열정적이면서도 동시에 냉철한 놀이꾼의 태도가 우리의 직업에서도 꼭 필요한 요소일 뿐 아니라 성공을 보장하기 때문이죠.(91-92쪽) 

이에 따라 주인공은 체스와 당구를 비교하며 놀이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체스의 경우 말을 옮기는 행위는 자체내 논리에 국한된 경직된 놀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상대방 왕을 잡을 때까지 말을 이리 저리 옮기는 과정에 수많은 변수를 고려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당구의 경우 큐로 공을 쳤을 때 그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는 순간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정점이라고 말한다.

참 인상적이고 저자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정치인과 국가를 놀이꾼과 야바위꾼으로 표현하는 저자는 사회와 국가의 부조리, 썩은 정치, 정경유착, 협잡, 비리 등으로 얼룩진 독일사회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길거리의 야바위꾼은(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의 이러한 오해를 간파하고 그것을 이용해먹습니다.(135쪽)

 '놀이'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의 원형 

저자가 놀이를 살인까지도 정당화시킬 정도로 극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을 오로지 하나의 화두, 즉 '놀이'에 대한 열정으로만 지탱하며 살아온 지적인 주인공을 통해 저자는 권태롭고 위태로운 삶을 재 해석하고 싶었다.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 그리고 권력의 핵심으로 잘못 정착된 국가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똑같은 벌을 내리는 것은 하층 계급에게만 너무도 유리하고 재력있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불리한 제도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19세기 초기에 팽배했던 이상적 평등광신주의와 사회 계층적 질투심의 일단입니다.(182쪽) 

왜 나폴레옹의 후계를 자처했을까? 주인공은.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한 살인자를 정당화시키려는 게 아니다. 그 이상으로 놀이를 통해 사회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까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