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소년을 만났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이피스신화'를 만나다.

어느날 낯선 남자 또는 여자를 만났다면 가슴벅찬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친다. 자기 생활의 일부에 낯선이의 향취가 자리잡게 되고 일순간 내 삶의 일부분이 도려내지는 고통을 느끼듯 그렇게 힘겨워한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자신의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면 이런 기대감과 혼란스러움은 더할 것이다. 꽉 채워진 '나', 즉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이런 낯선만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거부감과 귀찮음이다. 반면 불안정하고 결핍되고 뭔가 허기진 삶을 산다면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먼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고 흥미로운 여유를 다시 찾는 제2의 인생이다.

이 소설 <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 이피스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이피스 신화는 이피스와 이란테 등 두 남녀의 변신, 즉 뒤바낀 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이라는 것이 진정 자신이 가길 원하며, 가져야하는 당위성을 지닌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스코틀랜드가 가장 사랑한다는 저자 알리 스미스는 형식과 시점의 실험적 시도로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소설속 주인공은 스무살 한창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회속 자신의 모습에서 혼란을 겪는 앤시아. 언니 이모겐의 소개로 회사에 취직하지만 조직생리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톨이로 전락한다. 이런 혼란과 고통속에 있는 앤시아 앞에 레즈비언 예술가 로빈이 나타난다. 로빈은 레즈비언으로 정형화된 일방적 소통의 성을 거부하는 젊은이다. 두 남녀는 사회에 대한 혼란, 성에 대한 혼란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영원반 반려자로 ‘이피스’와 ‘이안테’가 되어 지속적으로 사회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운동을 해나갈 것을 맹세한다.

내가 브라이언에게 한 말이 바로 그래,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적시에 기어드는 거 있잖아. 내가 말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동성애자인 십대 청소년들이 동성애지가 아닌 십대 청소년들 보다 자살 확율이 여섯배나 높다는 군......(중략)......프로이트는 그것을 일종의 결핍 상태라고 정의했어. 노먼이 말했다. 무언가 정말 기본적인 것이 결핍된 상태라는 거지.(88-89쪽)

소녀와 소년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그 만남은 우리 사회 부조리를 없애기 위한 아름다운 조우이며, 고통과 힘겨움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사람으로 탄생하기 위해 행위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성'에 대한 잣대는 과연 누가 만들어냈는가? 그것이 신이라면 신은 또한 어떠한 '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런 의문이 소설의 주된 흐름이다.

앤시아를 소개시켜준 언니 이모겐이 이 사실을 알고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이와 반대되는 홍보전략을 만들어내라고 말한다.

이는 필요한 고민을 제어하기 위한 사회의 거대한 힘이며 인간의 자아를 위협하는 권력이다.

전세계적을 이백만명의 여아는 사내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출산 시 또는 그 이전에 죽임을 당한다. 이는 공식기록에 의한 것이다.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사내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여아는 오천팔백만명이 더 있으며, 이 둘을 합하면 그 숫자는 육천만에 이른다. 이것은 바뀌어야 한다. 2007년 전령사 소녀 이피스와 이안테.(126쪽)

사회적인 편견과 억압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은 회피가 아닌 맞선 투쟁이다. 그 싸움이 성에 대한 도전으로 레즈비언 등 동성애자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앤시아와 로빈을 통해 동성애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녀는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신비롭고 대담하고 역동적이 사람"

짧지만 많은 메세지를 담고 있는 소설 <소녀, 소년을 만나다>

스코틀랜드 국민들이 저자 알리 스미스를 사랑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의미 중 하나일 것이다.

용수철은 누르면 누를수록 더 멀리 더 힘차게 튀어나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럼 소녀와 소년, 나와 너, 우리, 그리고 모두 용수철인가?

획일적인 테두리에 속박된 이 시대 군상들에게 뭔가 메세지를 전달하는 소설이었다.

스코틀랜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지은이 알리 스미스 ALI SMITH

1962년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출생했다. 애버딘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 데뷔작인 단편집『자유 연애』로 샐타이어 상을 수상한 이래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2001년 작『호텔 월드』와 2004년 작『사고』는 부커 상과 오렌지 상 후보에 올랐고,『사고』는 휘트브레드 상을 수상했다. 최근작『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2007 클레어 맥클린 상과 르 프린스 모리스 상 후보에 올랐다.
알리 스미스는 시점의 변화, 형식상의 실험적 시도, 풍부한 시적 언어로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진중하고 정치적인 주제의식을 독창적인 상상력과 유머 감각으로 유쾌하게 표출해낸다는 평을 듣는다.

옮긴이 박상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 『기쁨의 탄생』『터키』『성공한 CEO에서 위대한 인간으로』『의무론』『인생이 내게 준 선물』등이 있다.

http://blog.naver.com/faust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