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정신	2013.7.10
20세기의 셔츠 얀 마텔 지음

재미있는 영화는 5분만 보면 알 수 있지만 때때로 책은 인내심을 갖고 100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얀마텔의 [20세기 셔츠]는 2/3이를 넘어가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걷는 것처럼 이정표를 알 수 없는 모호함이 도사리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단지 신기하다면 소설의 윤곽을 파악하지 못한 채 소설의 끝에 다가가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 주인공 헨리가 희곡을 쓴 박제사인 헨리의 의도나 목적을 모르면서 희곡을 돕는 일처럼 나도 20세기의 셔츠를 비슷한 심정으로 읽어나간다는 동일한 상황들에 매료되어 읽어 나갔다.

이 책은 책 속의 책들이 이야기의 실마리를 교묘하게 제공한다. 한 꺼 번에 풀지 않고 물고기에 떡밥을 주듯 감질나게 여기 저기 숨겨놓고 독자들을 애타게 한다.

20세기의 셔츠라는 소설의 제목은 바로 소설에 나오는 당나귀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이 나오는 희곡 속의 제목이기도 하다.

검은 세로줄이 쳐진 셔츠 안에 살아가는 베아트리스와 원숭이 버질은 서양배에 대해 길고 지루한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한다.

박제사가 희곡에 대한 정보를 띄엄띄엄 던져주면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에 헨리가 답답하고 궁금해하듯 우리들도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희곡은 책의 마지막에 가까울수록 이전에 나왔던 배아트리스의 반짇고리 목록에서 발견한 알 수 없는 단어들이 퍼즐조각처럼 하나하나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면서 헨리의 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처음 헨리가 홀로코스트에 관심이 많고 왜 홀로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헨리의 설명이 저자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아닐까?

“때로는 살아 있는 사람도 시체만큼이나 고약한 악취를 풍깁니다.” –본문 252

베아트리스를 고문한 인간, 버질과 베아트리스를 구타하고 죽인 소년들의 간악함은 죽은 시체 이상의 고약한 악취를 풍긴다. 얼마나 고약하면 그 옆에서 죽어가는 시체 구스타프가 있는지도 몰랐겠는가?

익명의 무수한 구스타프라는 희생자들에 대해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혹은 이미 과거인 것처럼 외면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박제된 동물을 통해 나찌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가 분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축축하고 덥고 짜증나는 여름에 이 책을 읽으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 충격적인 결말로 더운 열기는 서늘한 한기로 식혀져 있을 것이다.

인내심만 가진다면 결코 불친절하게 난해한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소설적인 즐거움과 저자가 의도한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다.

어디 유대인의 홀로코스뿐이겠는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억울한 역사의 과거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나 기록 등의 다양한 매체로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자신들의 과거를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어쩌면 더 무서운 일은 기록되지 않아 우리들이 애초에 기억할 수조차 없이 전쟁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죽어간 무수한 희생자들이 아닐까?

얀마텔, 20세기의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