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기대했었을까, 아무튼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에 이어 <별을 스치는 바람>까지도 꽤 감명깊게 읽었는데, 의외로 이 책은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다.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역시 이정명 작가구나 하는 느낌은 전해주었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모든것을 수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과연 특출한 능력일까?

거짓말을 못하는 한 인간이 자신은 가만히 있는데, 주위의 변화와 흐름때문에 여러가지 수식어를 갖는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웠다.

총에 맞아 숨진 남자. 그 곁에 남겨진 숫자들과 의문의 그림과 <나는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지.

그리고 현장에서 검거된 안길모라는 남자는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과연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용의자를 조회한 결과 살인,도박,마약거래등의 범죄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수배령이 내려진 국제범죄자라는 것을 아는 순간 그에게는 어쩜 그 상황을 변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그를 이해하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간호사 안젤라를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안길모의 인생사가 드러난다. 안길모의 아버지의 인생도 너무 안돼보였다. 어느나라든 막론하고 의사라는 직업은 최고의 인텔리직업이라 지칭될수 있는데, 간부를 살려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장의사로 추락하게 되는 순간 그의 아버지는 어떤 절망과 마주했을까. 그리고 기독교신자라는것이 밝혀져 교화소로 가게 되는 순간 이 부자에게는 더 이상 떨어질수 없는 나락의 끝으로 치닫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강씨아저씨. 그리고 그가 부탁한 딸 영애를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멀고 먼 인생여정을 걷는 길모의 모습을 보면 뜬금없이 포레스트검프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제니를 향한 변치 않는 지극정성의 사랑을 보여줬던 포레스트.

주인공 길모에게 보여지고 느껴지는 세상은 결코 천국의 안락함과 평온함이 없다. 거짓과 폭력과 탐욕이 난무하고, 그안에서 서로를 할퀴려 드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학적 지식으로 세상과 맞섰고, 당당해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 시작할때 던져진 암호는 참으로 간단하고 오묘했지만, 그를 토대로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나 장대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질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