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이 넘어갔고, 이미 황제로써의 권위나 권력을 발휘할수도 없는 상황에 단순히 황위를 이어받은 황제였던 순종.

구차한 삶의 연장이라 생각하지 말고, 가슴안에 비수를 품고 하루하루 버티며 잘 살아내 언젠가는 나라를 찾고 그 나라를 강건하게 세울 꿈을 꾸라 했던 아버지 고종의 말을 과연 순종은 얼만큼 믿고 의지했을까?

우리의 너무나도 슬픈 역사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 두께가 참 마음에 들어 도착하자마자 포장지를 뜯고 열심히 읽어나갔다.

자신의 곁에 믿을 사람 한명 없다 생각했을때의 그 두려움을 과연 순종은 어떻게 극복했을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배경에는 일본이 심어놓은 친일매국대신들로 가득했고, 심지어 자신을 시중드는 궁녀들마저도 일본인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았을때 그의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라 할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의지대로 끊는다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일단 그러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던 사람들에 비해 순종은 무엇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수 없고, 말할수 없었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도쿄를 방문하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순종에게, 반대의 뜻을 말하는 순종을 억압하고 탄압하기 위해 고종에게 불순한 행동을 취한 매국노들과 일본관료들에게 허물어져야 했던 순종.

즐겨마시는 커피에 아편이 타졌었고, 그것을 마시고 치아를 전부 잃어야 했던 순종. 그렇지만 커피를 끊지 못하는 자신에게 심한 굴욕감을 맛봐야 했던 순종.

난 그의 인생이 너무 보잘것 없었음이 슬프기도 했지만, 세월이 흐르고 흐른 지금에도 그를 미약한 존재 그리고 조선역사상 가장 큰 대역죄를 지은 황제 아닌 황제로 생각한다는 것이 더 슬펐다.

그가 꿈꿨던 조선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도 아닌 할아버지가 앞세운 일본인들에게 의해 수치스럽게 죽임을 당해야 했음을 알았을때 느껴야 했던 그 트라우마는 결코 어떠한 방법으로 극복할수 없었을 것이다.

대체 권력이 뭐기에.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의 아들과 연을 맺고 한나라의 국모로써 자리한 명성황후를 그렇게 저주하고 증오했을까?

궁궐에 살고는 있었지만 결코 그 궁의 주인일수 없었고, 심지어는 자유롭게 나다니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수 있는 평민의 삶을 부러워해야 했던 순종을 기억속에 지운지 오래다. 저자도 서문에서 말했듯이 항상 그는 마지막 임금이라는 허울만 있었지, 결코 그가 그 당시에 느껴야 했던 배신감과 모멸감, 치욕감을 우리는 알려 하지 않았다. 불편한 진실일수록 우리는 정면돌파하기보다는 회피하려 하고,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심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난 순종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아주 단편적인 도쿄방문을 축으로 그 당시를 미뤄 짐작하며 읽으려니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깝고 울분이 넘치는 지경이었다. 왜 우리는 일본에게 그 오랜 시간 짓밟힘을 받아야 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암울한 시대속에서도 어떻게 주체성 없이 살아남은 인간들이 이 땅에 발붙이고 자손을 번창하게끔 했는지 답답했다.

순종은 우리에게 결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다. 시대를 잘못 탔고,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고, 어쩜 더 많은 회한과 고통속에 한을 삭히며 살다간 비운의 황제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