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너 모르티어르 글, 카쳐 퍼메이르 그림 <마레에게 일어난 일> - 보림

 

 [마레에게 일어난 일/보림]생명의 시작

<생명의 탄생>

마레는 벚나무 아래 놓인 등나무 의자에서 태어납니다.

붉은 벚나무 가지의 벚꽃들이 마레의 탄생을 맞이하듯 활짝 피었어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또 다른 생명이 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아요.

해마다 벚꽃은 만발하지요. 마치 지난 해 보았던 바로 그 벚꽃처럼 말이에요.

더구나 벚꽃은 확 피었다가 금새 져 버려 늘 아쉬운 꽃이에요.

왠지 벚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레는 무럭무럭 자라 할머니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마레가 가장 먼저 배운 말도 '엄마'보다 '과자'가 먼저 일 정도로

과자를 좋아했어요. 할머니도 과자를 좋아했지요.

 

 

<죽음>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쓰러졌고, 어른들은 할머니가 깊은 잠에 빠진 거라며 마레를 위로합니다.

물론 마레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요.

어느 날 아침 깨어난 할머니는 더이상 마레를 알아보지 못했고, 멍하니 TV만 보았지요.

어른들은 할머니의 말을 알아 듣지 못했고, 알아 들은 척만 했지만,

마레는 진심으로 할머니의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었지요.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십니다.

예쁜 양탄자 위에 찻잔 조각이 흩어져있고, 할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듯 두 눈을 감고 빙그레 웃고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찻잔 하나를 깨뜨리고는 슬며시 이 세상과 작별했지요.

 

죽음은 순서도 없고, 예측도 할 수 없어요.

작가의 표현이 가슴에 와닿았어요.

죽음을 어둠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마레의 생명은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으니까요.

 

<죽음, 생명의 또 다른 시작>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어요.

그대로 두면 방안이 눈물로 가득 찰 것 같았지요.

죽음 앞에서, 눈물 앞에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건 아이 뿐이겠지요.

아이는 차갑고 냉정한 간호사들을 제치고 할머니를 할아버지에게 데려가요.

 

마레와 할머니 입에서 포실포실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어요.

할아버지 입에서는 하얀 김이 새 나오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요.

할머니는 죽음의 문턱의 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온걸까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찾아 온 죽음의 신에게 자신을 먼저 데려가라고 말을 했던 걸까요?

그래서 갑작스레 '찾잔 하나 깨뜨리고 슬며시 세상을 떠난 걸까요?'

그래서 생긋 웃으며 맘이 평온했을까요?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림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린 언젠가 죽음 앞에 헤어져야 할 때가 오겠지만...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받아 들일 때 보내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거겠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마당을 나온 암탉> 이삭이 떠올랐어요.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새로운 생명을 살리고, 또 탄생시키고...

 

태어나는 생명도 경이롭지만, 죽음도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멋진 작품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