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주현 저, ’황녀’ - 아름다운 날

 
고등학교 시절 문득 영국의 왕실 이야기를 다룬 만화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는 왜 왕실이 사라졌는가’ 생각했다. 우리나라에 왕실이 현존하고, 그들이 사랑한다면 만화처럼 이루어질까 하는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여 어느덧 ’지성인들은 왜 봉권주의를 무너뜨리자’고만 외치고 왕실의 역사를 인정하려하지는 않았는가... 뭐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난 역사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그때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학생들은 현 정치의 부패앞에 과거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 아님 과거는 모두 다 청산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를일이다면서 혼자 깊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어느날 드라마에서 방영되는 ’궁’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고, 또 잊었으며....’황녀’를 보며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나이가 드니 마지막 황실의 아픔과 이념의 아픔등에 초점이 맞추어 질 정도로 나는 성숙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한 나라의 옹주로 태어났으나 황실에서 인정받지 못한 존재였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으나 옹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살아 온 이 여인에 대해 나는 내내 미안하고 마음 아팠다. 우열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자존감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라 잃은 옹주는 늘 주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때론 몰매를 맞아도 배신을 당해도 늘 미안한 옹주의 삶이 답답하고 화가 나고...옹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 하는 의지마저도 파괴해 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누가 한 나라의 옹주를 이토록 비참한 삶을 살게 만들었을까? 나는 옹주에게 책임을 묻는다.

 

명성황후를 잃고 슬픔에 빠졌던 고종은 상궁 염씨에게서 문용옹주를 얻었으나, 당시 궁중의 실세였던 귀빈 엄씨(영친왕의 어머니)의 권세를 피해 양부모에 의해 길러지게 된다. ’갓난이’란 이름으로 철저하게 시골촌부의 딸로 자라나게 된다. 그나마 양아버지가 죽고 양어머니가 재산을 팔아 가출을 한 이후론 거지 신세가 되어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궁 염씨의 지인 임상궁의 보호를 받으며 진명여고까지 입학하게 된다. 자신이 숨겨진 황녀란 사실을 알고 황녀로서의 품위를 배워나간다. 문용은 17살에 명문가 김한규의 아들김희진(당시 14살)과 결혼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남편을 잃고, 아들도 죽는다. 그러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문용을 안타까워하며 여전히 사랑을 베풀었다. 그런데 그나마 어른들이 돌아가시자 배다른 시동생들을 거두느라 그녀의 젊은 생은 영혼마저 안타까울 정도로 서럽다.

 

그녀도 예측했지만.... 알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비극으로 치닫으리란 것을.... 자신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문용의 생각도 한 몫 했을 터이고, 그녀의 성격 탓일 수도 있고, 태어남을 부정당한 패망한 나라의 황녀로서의 예견된 비극일 수도 있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녀가 선택했다는 것이다. 천성이 남을 희생시키지 못하는 탓인게다. 절친하게 지내던 시누이 숙진은 의사가 되겠다며 일본유학을 떠났고, 문용은 시댁에 남았다. 정절을 지키고, 그 많은 식솔들을 이끄는 것이 큰며느리로서 당연한 의리라고 생각했다. 의리 이상의 이념 같은 거였다.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보다 더 큰 이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용은 숙진과 자신의 삶이 달라지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