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 글, 김민정 그림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 아이즐북스

들쳐보는 전래 동화; 3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집에 한 두권은 갖고 있을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나쁜 호랑이를 혼내주는 사물들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책에 나오는 농기구들은 생소한 물건들인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도시생활을 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농경기구를 익힙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 아이들을 그토록 즐겁게 만들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호랑이와 할머니간에 느꼈던 심리적 구조때문이 아닐까요? 부모와 자녀는 분명 사랑하지만 다툼과 권력은 존재하게 됩니다. 아주 미묘하게 엄마는 아이에게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때론 드러내놓고 아이와 신경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아이들한테는 있어서 엄마는 힘없는 자를 탄압하는 나쁜 호랑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더 나아가 꿈을 꾸지 않을까요? 부엌의 물건들이 엄마를 향해 돌진하여 혼내주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한때는 신적인 존재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던 호랑이들이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권력을 행사하긴 하지만 많이 권력을 상실했지요. 호랑이는 나쁜 귀족이나 권력자로 상징되고 있고, 각종 농기구들이 힘을 모아 물리치는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관리들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요. 옛 조상들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이런 해학을 아이들이 아직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쁜 호랑이를 혼내주는 모습에 즐거운 건 다 이유가 있겠지요.

  특히 아이들이 똑같은 이야기 중에서도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플랩북 형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물들이 팥죽을 먹고 부엌 곳곳에 숨는 장면을 묘사하기에 플랩북의 형태가 아주 적당했다고 생각됩니다. 실시간으로 움직여 자리를 잡는 사물들을 보며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덤불 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오는 장면, 여름내내 바지런히 팥을 매던 할머니를 들추면 어느 새 가을이 되어 팥을 수확하는 장면이 되지요. 팥죽을 먹고 알밤이 아궁이에 쏘옥 숨는 장면, 자라는 물 단지 속에, 송곳은 부엌문 뒤에 숨는 장면....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속도감을 내며 보는 장면은 호랑이가 사물들에게 당하는 장면이지요. 특히 물 한번 마시려다 플랩을 들치는 순간 자라에게 손가락 물리고, 물지똥에 미끄러지고....여기서부터는 웃느라 아이들이 숨을 헉헉 거립니다. 아이들의 통쾌함게 웃습니다. 조상들의 해학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통쾌함으로 다가오다니 즐거운 일입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헐머니의 표정입니다. 고생 많이 한 시골 할머니처럼 쪼글쪼글한 얼굴에 눈도 처져서 가느다랗게 표현되었지만 무척 선해보이지요. 바로 우리 할머니같은 모습입니다. 쇠똥 근처에 계속 날아다니는 파리도 너무 웃겨요. 툇마루에 놓인 요강, 잘 익은 커다란 감, 부뚜막 등 오늘날과 다른 부엌찾는 재미도 있답니다. 농기구들을 보면서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재미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실제로 본 물건은 별로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전래를 더 읽혀야겠다 생각해요. 사라져가는 것들..... 이젠 박물관에서만 보게 된 물건들이 점점 많아지네요.